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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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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인생상담 저희들끼리 척척”
맏딸 영우(19) 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둘째 효석(17) 군은 고교 2학년이고, 셋째 선우(12) 양과 막내아들 현석(9) 군은 각각 대도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이다.
처음에 이웃들은 이상한 눈으로 김 씨 가족을 바라봤다. 자녀 넷을 둔 가정이 워낙 드물기 때문이다.
캐릭터상품 개발업체인 ‘캐릭터라인’을 운영하는 김 씨는 “주변에서 ‘모르몬교도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면서 웃었다. 모르몬교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다산(多産)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이를 많이 낳은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부부가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들도 동생을 원하다 보니 어느새 네 명이 됐다는 것이다. 김 씨는 아이 넷을 키우다 보니 ‘사부(四父)’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 “아이가 많으면 오히려 손이 덜 가요”
김 씨의 부인 김성희(45) 씨는 양육비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애들이 여러 명이니 총액으로 보면 당연히 많이 들겠지요. 그렇지만 아이 한 명당 비용은 오히려 적게 들어요. 애들끼리 책과 옷을 물려받아 사용하니 하나만 키웠을 때보다 오히려 돈이 적게 드는 셈이죠.”
맏이의 좋은 습관을 동생들이 본받는 것도 장점이다. 맏딸의 취미가 책읽기라서, 둘째와 셋째도 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서가에 꽂혀 있는 책만 3000여 권이다. 덕분에 막내의 장난감은 책이 됐다.
김 씨 가족은 외식이나 나들이 장소를 정할 때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김 씨 부부는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걸 볼 때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형제간에 서로 주장을 펴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성을 배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셋째인 선우의 입김이 세졌다. 선우가 오빠 혹은 언니 편을 드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우는 “제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죠”라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만 3세가 지나면 부모보다 형제자매를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면서 “아이들은 싸우고 화해하면서 인격과 사회성을 키워나간다”고 말했다.
○ 서로 자극하며 선의의 경쟁
다자녀 가정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 부모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들 간에 일종의 경쟁체제가 형성되는 것이다.
외국계 홍보대행사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에 근무하는 최경(26·여) 씨는 4남매 중 셋째다. 그와 두 언니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고 막내 남동생은 올해 대원외고에 진학했다.
“언니들이 연달아 서울대에 들어가고 제 차례가 되니 사실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쟁심이 생기더라고요. 자극이 돼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남동생 종성(16) 군은 누나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누나들이 영어 수학 공부는 물론 피아노까지 돌아가며 가르쳐줘서 과외 한 번 받지 않았어도 성적이 상위권이다.
최 씨는 “언니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도 노는 것도 모든 면에서 또래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면서 “언니 옷을 빌려 입고 가면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서 패션 리더가 됐고, 공부도 언니들이 도와줘서 학업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최 씨는 언니들로부터 남자 친구 문제에서부터 직장 생활, 재테크 상담까지 받고 있다.
“형제자매가 많으면 커서 더 좋아요. 어릴 때보다 더 사이가 좋아지거든요. 형제가 아니라 마치 친구 같아요. 저도 결혼하면 아이는 꼭 세 명을 낳아 자매나 형제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 자녀들 비교는 금물
전문가들은 “부모는 절대 자녀들을 한 가지 가치와 기준으로 비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부모가 “넌 왜 형만큼 공부를 못하느냐. 형 좀 보고 배워라”는 식으로 동생을 야단치면 동생은 형에 대한 열등감에 빠질 뿐만 아니라 막연한 적개심까지 키우게 된다.
노경선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다자녀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각 자녀가 가진 장점을 찾아내 계속 칭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녀의 개성을 키워줘야 존재감과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물론 부족한 부분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둘째는 참 정리정돈도 잘하지” “우리 셋째는 정말 엄마도 잘 도와줘요”라는 식으로 각자의 장점을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시범 씨는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 아이를 키우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아이들끼리 작은 갈등이 생길 때 일방적으로 누구 편을 들어주면 안 됩니다. 편중되지 않게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최대한 공감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서로 알아서 화해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크는 것 아닐까요.”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