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헌혈 요건 까다로워 30%는 퇴짜”

  • 입력 2008년 1월 17일 07시 44분


코멘트
■ 11일 문 연 동성로 ‘헌혈의 집’가보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해야죠.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15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헌혈의 집’. 손원자(50·여·대구 남구 봉덕동) 씨의 오른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혔고, 이 주사기는 컴퓨터와 연결된 서너 가닥의 고무튜브와 연결돼 있었다. 손 씨는 백혈병 환자를 위해 혈소판 헌혈을 하던 중이었다. 경북대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죽음을 앞둔 환자의 편안한 임종을 돕는 것)를 하고 있는 그는 이 병원에서 치료 중인 백혈병 환자가 혈소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았다.》

그는 “2주 후에 다시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때 또 할 생각”이라며 “헌혈은 건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귀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이 11일 문을 연 이곳은 200여 m² 크기로 쾌적한 인테리어에 휴식공간, 음료시설, 혈압계, 컴퓨터 등을 갖추고 있다.

‘피를 빼는 곳’이라는 다소 어두운 이미지는 사라지고 아담한 건강관리센터 같은 모습이다.

헌혈을 하면 빵이나 우유를 주곤 하던 것은 옛날 얘기. 건강하고 안전한 혈액 공급을 위해 헌혈을 할 수 있는 자격도 무척 까다로워졌다.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질병이나 치료 경력, 약물 복용 등 20여 가지 항목을 확인해서 적격, 부적격 판결을 받아야 한다.

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현재는 하루치 혈액 수급을 못할 정도로 피가 모자란다. 이는 다른 지역도 사정이 비슷하다.

헌혈을 하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적은 탓도 있지만 헌혈을 하기 어려운 피가 많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라는 게 혈액원 측의 설명이다.

검사를 거쳐 ‘헌혈 부적격’ 판정을 받는 사례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15일 70여 명이 헌혈에 ‘성공’했지만 방문한 사람은 100명이 넘었다.

대구와 경북지역의 연간 헌혈자는 수년 전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했으나 지난해는 15만7000여 명으로 줄었다. 헌혈자의 85%가량이 16∼29세다.

▶표 참조

이곳에 근무하는 황명화(40·여) 책임간호사는 “이제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건강하다는 것을 보증하는 셈”이라며 “헌혈은 건강한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헌혈을 하던 대학생 배영인(22·대구 북구 태전동) 씨는 자랑스러운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이전에 헌혈을 하려다 체중이 모자라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까지 들려줬다.

배 씨는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오늘은 동성로에 나왔다가 ‘헌혈 적격’ 판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더라”며 “주사기를 통해 빠져나가는 피를 보고 있으니 누군가 도움을 받겠다 싶어 기분이 좋다”라고 밝혔다.

대구에는 ‘헌혈의 집’이 동성로를 비롯해 반월당, 2·28기념공원, 대구보건대 등 5곳에 있으며 경북에는 포항, 안동, 대구대 등 3곳에 있다.

경북 구미시 ‘헌혈의 집’은 찾는 사람이 적어 지난해 5월 문을 닫기도 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