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띠만큼 무서운 2차 오염원도 없애야”

  • 입력 2007년 12월 12일 20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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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2차 환경오염 피해와 인근 동식물 피해 등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기름띠를 제거한 뒤에도 '오일볼'과 유(油)처리제, 휘발성유기화학물, 중금속, 방제용품 등에 의해 2차 피해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최예용 부위원장은 "1995년 시프린스 사고를 거울삼아 눈에 보이는 기름띠만 제거하고 방제를 끝낼 것이 아니라 철저한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일볼, 유처리제 등 처리문제 심각

환경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름띠를 제거한 뒤 바다 속에 남는 오일볼이다.

원유 가운데 휘발성 물질은 날아가고 무거운 성분이 뭉쳐 생기는 오일볼은 오랫동안 바다 속을 굴러다니며 물고기나 해조류를 죽이고, 플랑크톤을 오염시켜 먹이사슬을 파괴한다.

이런 오일볼을 현재로선 마땅히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유(油)처리제도 2차 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환경운동연합은 12일 "정부가 항공기와 헬기까지 투입해 유처리제를 살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처리제는 기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름성분과 물이 쉽게 섞이도록 하는 화학약품으로 독성이 있다. 이 약품을 사용하면 겉보기에는 기름띠가 줄지만 실제로는 오염물질이 바다에 그대로 남아 언젠가는 다시 해안으로 몰려올 수 있다는 것.

그런데도 유처리제를 쓰는 이유는 흡착포보다 비용이 싸고, 살포 즉시 기름띠가 제거돼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 쓴 흡착포 등 방제용품을 함부로 버리거나 태우는 것도 2차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대기오염과 함께 비가 오면 폐기물이 쓸려 내려가면서 피해지역을 확산시킬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유를 빨아들인 흡착포 등을 함부로 태워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주민, 자원봉사자 건강 피해 우려

주민과 방제 작업에 참가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안전도 문제다.

기름이나 유처리제에 접촉한 뒤 심한 두통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등 벌써부터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태안보건의료원은 175명이 두통과 메스꺼움 안과질환 등을 호소하며 작업장 인근에 배치된 구급차에서 두통약 등을 받아 갔다고 밝혔다.

충남 태안군 일대에서 의료봉사를 벌이고 있는 노형근 길병원 교수(독성전문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탄화수소계 유독물질이 포함된 기름냄새가 중추신경계와 기관지에도 영향을 줘 호흡곤란 등의 증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기름 냄새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감각 이상, 운동 장애, 폐렴, 기관지염 등의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며 "특히 지역주민의 경우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자연환경 훼손 장기화

태안군과 인근 서산시의 각종 천연, 희귀 동식물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천연기념물 413호인 신두리 사구(모래언덕)와 희귀식물의 보고인 천리포수목원, 아시아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천수만 철새도래지가 있다.

신두리사구의 해변 쪽 모래사장은 이미 기름으로 뒤범벅이 됐다. 환경연합 임희자 간사는 "기름 섞인 모래가 사구로 날아들면 희귀 동식물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두리 사구는 전국 최대의 해당화 군락지일 뿐 아니라 사구 안에는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민간수목원으로 미국 등 60개국에서 가져온 1만3000여 종의 희귀식물들이 살고 있는 천리포수목원도 비상이 걸렸다.

이 수목원의 최창호 식물자원사업팀장은 "기름 냄새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며 "공기 중의 기름성분이 식물 잎사귀의 기공으로 파고들면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름띠가 남쪽으로 번지면서 천수만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천수만은 검은머리물떼새 등 멸종 및 희귀 조류 수십만 마리가 날아드는 철새도래지. 11일까지 기름 오염으로 이 지역에서 야생조류 16마리가 죽었다.

태안=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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