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 켜는 ‘국가 물 관리사업’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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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태풍 ‘나리’로 인해 한반도 남부지역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보는 등 수해(水害)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지만 수해 예방을 위한 ‘국가 물 관리사업’은 여전히 낙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를 보고 난 뒤 원상 복구하는 ‘사후약방문’식 사업에 주력하고 예방사업은 등한시하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재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비효율이 낳은 폐해

본보가 17일 입수한 국회 예산정책처의 ‘국가 물 관리사업 결산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물 관련 정책이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라며 물 관리사업의 전면적 개편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복구비로 들어간 국가 예산은 2조2045억 원으로 전체 물 관리사업 예산(7조7578억 원)의 28%에 이른다.

반면 자연재해를 줄이는 기술 개발이나 친환경적 하천 복원 사업 등 예방사업에는 1094억 원(1.4%)만 쓰였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이처럼 재해 복구에 집중하는 재정 투자 양상을 10년간 지속하고 있으나 엘니뇨와 국지성 집중호우 등 새로운 형태의 기후 변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피해복구 방식의 치수(治水) 사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건설교통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기후 변화로 인한 최근 30년간 재산 피해는 10년 단위로 3.2배씩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피해액도 1조7000억 원에 이른다. 국가 물 관리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물 관리사업을 행정자치부(소방방재청 포함)와 농림부, 환경부, 건설교통부 등 4개 부처가 담당하는 것도 문제. 부처 간 사업이 비슷하거나 중복돼 예산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환경부와 건교부가 나눠 맡고 있는 상수도사업은 대표적인 비효율 사업으로 꼽힌다. 지방상수도는 환경부, 광역상수도는 건교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는 상수도 연구 관리에 359억 원, 건교부는 상수도 조사 관리에 1372억 원을 썼다. 이렇게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는데도 수돗물 누수율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5년 현재 전국에서 60억600만 t의 수돗물이 생산됐으나 이 가운데 8억4500만 t(14.1%)은 실수요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노후 수도관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5750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수돗물 누수율은 2002년 12.3%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14% 수준으로 늘었다.

지방상수도 가동률은 53.9%, 광역상수도는 48.2% 수준으로 관리 주체가 이원화된 1994년 이후 가동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

최근 정부는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이라는 새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2005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물 산업에 대한 정책 상황을 점검하라는 지시에 따라 환경부가 마련해 7월 중순 경제정책조정회의 안건으로 제출한 것.

물 산업 육성책은 ‘세계적 수준의 물 산업 강국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10년 내 20조 원 규모의 산업으로 육성 △글로벌 수준의 스타 기업 육성 등의 목표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이미 ‘물 산업 육성과’라는 조직을 신설했으며 내년까지 ‘물산업육성법’을 제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민간 수자원 전문가는 “유엔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의 정부가 자원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물 산업 육성’이라는 방안을 끌고 나온 것은 정권 말기의 ‘립 서비스’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예산정책처의 강상규 분석관도 “현행 물 관리사업도 부처 간 중복 투자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물 산업 육성책을 추진하더라도 유사한 문제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국가 물 관리사업: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를 예방하며 안전한 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수량관리 △재해 및 하천관리 △수질보전 사업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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