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가 라이터로 장판에 불 붙인듯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수용시설 화재 발화지점에서 수용소 내 반입금지 품목인 라이터 쇠붙이 2개가 발견됨에 따라 화재발생 원인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불은 라이터로 붙인 것?=라이터 쇠붙이 두 개는 경찰이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하는 중국동포 김모(39·사망) 씨가 머물렀던 304호실에서 발견됐다.

사건 직후 감식을 벌여온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12일 1차 화재 감식 결과 발화지점이 김 씨가 혼자 있던 304호실의 거실 사물함 쪽 TV와 공중전화기 부근 사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라이터 쇠붙이가 정확히 304호실의 어느 지점에서 발견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304호실 생존자 쉬레이(31) 씨는 “김 씨가 불을 붙이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불이 났을 때 김 씨가 바닥에 깔려 있던 우레탄 장판을 뜯어 TV 밑으로 번지던 불 속으로 넣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불이 났을 당시인 11일 오전 4시경 304호실에 수용됐던 8명 중 김 씨를 제외한 7명은 모두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여수소방서 관계자도 “화재 진압 후 살펴보니 발화지점에 우레탄 장판이 탄 흔적이 있었다”며 “방화자가 바닥에 깔린 우레탄 장판을 한데 모아 태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수용시설 보안점검 도마에=김 씨가 라이터로 불을 지른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금지품목인 라이터를 어떻게 수용시설 내에 들여올 수 있었는지에 경찰 수사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라이터 쇠붙이가 두 개라는 점 때문에 경찰은 공범 여부도 수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김 씨가 있던 304호실 옆방인 305호실 수용자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번 화재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청주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진 이모(37) 씨는 이날 한겨레신문 기자와 만나 “305호실에 수용돼 있다 숨진 우즈베키스탄 출신 예르킨(47) 씨가 평소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화는 두 번째=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2005년 4월에도 강제출국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인 3명이 201호실에서 라이터로 우레탄 장판에 불을 붙여 방화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당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는 소방서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체 처리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에 이어 이틀째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외국인 수용자들을 상대로 외국인 보호시설의 위생과 시설, 수용자 처우, 장기 구금 등 인권침해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여수=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화보]여수 출입국관리소의 처참한 화재 현장

■ 남는 의문점

304호실에서 발견된 라이터 쇠붙이 두 개는 어떻게 수용시설에 반입된 것일까.

규정상으로는 라이터, 성냥 등 소지가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를 피해갈 ‘허점’이 여럿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용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인 야외운동, 사무실에서 진료나 조사를 받을 때, 면회객을 만날 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라이터 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수용자들이 입·퇴소할 때만 금속 탐지기 등을 동원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일상적인 야외운동이나 진료 면회 조사 등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몸수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터 쇠붙이가 두 개인 것으로 미뤄 김 씨에게 공범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치료 중인 부상자들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왜 생명을 건 탈주를 계획했으며 방화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달아나려고 했을까? 경찰은 김 씨가 불이 난 후 직원들이 이중으로 된 쇠창살문을 열고 들어와 사람들을 구조하는 어수선한 틈을 타 달아나려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가 “불이야”라고 소리치며 수용자들을 깨웠던 것도 혼란을 부추겨 직원들이 빨리 문을 열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재 초기 문이 열리지 않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김 씨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여수=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화보]여수 출입국관리소의 처참한 화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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