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울타리’ 맏딸 5대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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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계셔도 든든한데 엄마의 엄마, 그 위 엄마까지 살아계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에 이중삼중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기분이랄까요.”(4대 이미란·30)

15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이상숙(3대·51) 씨 집에 딸과 ‘엄마들’이 모였다.

이 씨를 비롯해 딸 미란 씨와 어머니 나한순(73), 외할머니 천부전(96) 씨, 9월 돌을 지낸 외손녀 민서에 이르는 5대 맏딸 직계가족이다.

이 가족은 대한의사협회와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노바티스(대표 안드린 오스왈드)가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가족애를 짚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범국민 5대가족 찾기’ 행사에 신청한 20가족 중 하나다. 여자를 중심으로 모여 사는 ‘신모계사회’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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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 보이는 비결을 묻자 “집안 내력인 요리 솜씨 덕”이라며 5대 가족은 크게 웃었다. 1대인 천부전 할머니에서 딸과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 5대가 자리를 함께했다. 왼쪽부터 천 할머니, 2대 나한순 할머니, 3대 이상숙 씨, 4대 이미란 씨, 5대 김민서 양. 수원=박영대 기자


이들에게 딸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때 남편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6남매를 혼자 키우다시피 한 2대 나 할머니에게 맏딸 이상숙 씨는 자식이자 남편 같은 존재다. 나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철이 들어 효성이 지극했던 맏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신세진 분들 있으면 모시고 오라”고 한 뒤 생일상을 직접 차려 준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큰딸이 제일 든든해. 얘는 어릴 때부터 동네 칭찬은 다 받고 자랐다니까.”

나 할머니 말에 이어 이 씨가 4대 미란 씨 칭찬에 나섰다.

“큰딸은 대대로 우리 집안에서 특별한 존재예요. 집안 대소사를 모두 딸들이 주도해서 결정을 내리지요. 미란이도 매사 지혜롭고 따뜻하게 동생들을 거느리니 연년생인 남동생(29)도 평생 대든 적이 없어요.”

이들은 모두 수원시 인근에 모여 산다.

차로 멀어야 30분, 가까우면 5분 거리다. 큰딸들만 모여 사는 게 아니라 천 할머니가 낳은 4남매 자녀, 나 할머니가 낳은 6남매 자녀, 3대 이 씨가 낳은 3남매 자녀도 모두 가까이 산다. 시장에 가도, 미용실에 가도 가족 누군가와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이 대부분 고향 사람과 결혼해 고향에 정착하긴 했지만 5대가 한꺼번에 모여 살게 된 것은 육아문제 해결이란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4대 미란 씨가 5년 전 결혼하면서 서울로 이사 갔다가 5대 민서를 키워줄 사람이 없어 최근 수원으로 이사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시로 모이지만 1대 2대 할머니의 생일과 명절에는 반드시 자리를 같이한다. 미란 씨의 남편 김호성(34) 씨는 “가족 모임이 잦고 많게는 70∼80명이 모이는 잔치와 술자리가 많아서 결혼 초기에는 얼떨떨했다”며 “지금은 익숙해져서 오늘은 안 모이나 싶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아흔을 넘긴 천 할머니는 몸 상태가 좋을 때는 동네 이런저런 일에 참견할 정도로 건강한 편이다. 동네 사람들이 “오래 사셔야죠” 하면 “오래 살아 뭐 해”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2대인 나 할머니도 약수터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르내릴 정도로 정정하다.

두 할머니의 건강비결은 ‘가족’이라는 힘. 3대 이 씨는 “모두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너무 고생했으니 이제는 편하게 사셔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감정을 표현한다”면서 “딸과는 수시로 ‘사랑한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수원=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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