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8000억대 3자명의 CD로 분식회계 무더기 적발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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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은행, 건설업체, 회계사 등이 짜고 7개월 새 1조8000억 원에 이르는 제3자 명의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영세 건설업체의 자본금을 부풀리는 데 이용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는 건설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증권사 자금으로 은행에서 거액의 CD를 발행받은 뒤 CD 사본과 발행 확인서 등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모 증권사 전 직원 이모(43) 씨와 사채업자 최모(50) 씨 등 브로커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중간에서 이를 알선한 브로커 46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달아난 브로커 10명을 기소 중지하는 한편 건설업체 관계자 등 233명을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했다.

검찰은 CD 발행에 관여한 13개 시중은행의 102개 점포 담당자와 7개 증권사 관련 직원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리도록 금융감독원에 통보했다.

▽“이해관계 일치”=소규모 건설업체인 A개발진흥㈜은 지난해 말 서울 중구 명동의 사채업자(브로커)에게 100억 원짜리 CD 발행을 의뢰했다. 연말 회계처리 과정에서 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건설협회 등에 그대로 보고할 경우 올해 공사 수주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사에서 수수료 1억 원을 받은 사채업자는 증권사, 은행 직원 등과 함께 CD 발행 조건을 상의했고 CD 투자 실적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증권사 직원은 회사 자금을 동원해 은행에서 CD를 발행했다.

은행 직원은 증권사에서 납입하는 CD 발행 대금을 유치해 수신 실적을 올리는 한편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CD를 발행해 별도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사채업자는 100억 원짜리 CD 사본과 발행 사실 확인서를 은행에서 받아 A사에 건넸고, A사는 유동자산이 충분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해 건설협회에 보고했다.

결국 증권사가 CD의 원주인이지만 무기명이라는 점 때문에 A사는 CD 사본을 구입해 자산을 부풀릴 수 있었던 것이다.

▽“광범위한 관행”=검찰은 전국 5만여 개의 건설업체 중 상당수가 이 같은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제3자 명의 CD’ 사본은 건설 시행업자가 토지 등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 등에게 자금력을 과시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제3자 명의 CD 발행은 명동 사채업자를 중심으로 장기간 광범위하게 만연돼 왔다”며 “그동안 단속이 미치지 못해 브로커나 금융기관 종사자 등이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보통 CD 액면가 1억 원에 50만∼100만 원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건설업체 대표와 브로커 등이 250억 원짜리 CD를 위조해 현금화하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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