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보다 값진 100만원…유서로 남긴 '사랑의 성금'

  • 입력 2006년 8월 18일 16시 14분


정부에서 생활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힘겹게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100만 원의 성금을 남겼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2동 동사무소에 따르면 16일 40대 후반의 한 남성이 찾아왔다. 지난달 28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러왔다는 그는 '내가 잘못되면 동사무소 직원에게 전해다오'라는 말이 쓰인 밀봉된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본 동사무소 직원은 유서와 1만 원짜리 지폐 100장을 발견했다. 소인이 찍힌 우표 수백여 장이 담긴 손때 묻은 우표책 1권도 함께 들어 있었다.

유서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웃들을 위해 돈을 써달라'는 바람과 생전에 도움을 줬던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생애 마지막 선물인 우표를 남긴다'는 뜻이 표현돼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이웃사랑을 실천한 주인공은 향년 76세로 세상을 뜬 이영순 할머니.

이 할머니는 15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려운 이웃'이었다. 2002년부터는 당뇨합병증으로 시력까지 잃고 기력도 많이 약해졌다. 6년 전부터 매월 정부에서 생활비 4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병원비, 생활비 등으로 쓰고 나면 빠듯한 살림이었다.

이 할머니 생전 고인의 집에 자주 들렀던 동사무소 직원은 "우표 중에는 1963년 소인이 찍힌 것도 있다"며 "돈과 우표는 할머니께서 평생 동안 모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할머니께서 평소에도 항상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마음을 돈과 가장 아끼시던 우표로 남기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역시 어려운 생활을 하며 따로 살아온 아들 임모(49) 씨는 직원이 돈을 돌려주려 하자 "어머니의 뜻이니 그냥 받아달라"며 서둘러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한강로2동 동사무소는 이 할머니가 남긴 성금을 사회복지시설이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기탁할 예정이다.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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