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고법 부장판사 사전영장]법원-검찰 미묘한 갈등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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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조모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영장심사를 맡을 서울중앙법원에는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 전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8일 결정된다. 연합뉴스
7일 조모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영장심사를 맡을 서울중앙법원에는 하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 전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8일 결정된다. 연합뉴스
7일 조모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전현직을 통틀어 고위직 법관으로는 두 번째다.

6·25전쟁 당시 전시물품을 착복한 국민방위군 사건과 관련해 이 물품을 제공 받은 판사들이 구속되고, 1971년 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옥죄기 위해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적은 있다.

그러나 재판과 관련해 금품이 오간 비리로 법관에게 영장이 청구된 것은 사법사상 처음이다. 특히 조 전 부장판사는 사표를 제출해 수리된 게 4일 오후여서 현직 법관 신분을 벗어난 지 불과 3일밖에 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현직 법관이 이전의 법조 비리 사건처럼 변호사로부터가 아니라 사건 브로커에게서 직접 금품을 받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원-검찰 갈등 재연=이번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법원과 검찰은 여러 차례 파열음을 냈다.

수사 초기 검찰이 조 전 부장판사의 예금계좌 5년치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은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추적 기간을 제한해 발부했다. 조 전 부장판사 부인의 예금계좌에 대해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됐다.

지난달에는 김 씨가 조 전 부장판사와 관련한 진술을 번복하자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공판 전 증인신문을 위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찾아갔으나 김 씨가 진술을 거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충돌은 다른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최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청구한 구속영장은 5차례나 기각됐다. 4일에는 법원이 “법리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례적인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검찰 내에서는 “이번 사건 수사 때문에 법원이 그러는 것이냐”는 격앙된 반응이 흘러나왔다.

법원과 검찰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대립해 왔다. 1971년 검찰이 현직 판사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100여 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해 이른바 ‘1차 사법파동’이 터졌다.

1997년에는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제 도입에 대해 검찰이 “고유권한 침해”라며 반발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개혁안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을 보였다.

▽영장심사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8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법원과 검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함으로써 ‘공’은 이제 법원에 넘어가 있다.

조 전 부장판사는 후배 판사 앞에서 심문을 받는 처지가 됐고, 법원으로서도 한때 동고동락했던 법관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한다는 것 자체를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영장이 기각될 것을 우려한 시민단체들은 아예 “영장을 발부하라”고 법원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런 전후 사정 때문에 법원은 자칫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난을 의식해 법리 논쟁보다는 여론재판식으로 심리가 진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 전 부장판사에 대한 영장 발부를 심리할 서울중앙지법 이상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라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원칙과 기준에 의해 심사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검찰도 최근 법원이 검찰의 영장실질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분위기 등을 의식해서인지 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또 28기야”잇단 비리연루에 연수원 동기들 곤혹

수입 카펫 판매업자 김홍수(58·수감 중) 씨의 법조계 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7일 조모 전 고법 부장판사 등 사건 핵심 관련자 3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일단락됐다.

▽등 떼밀린 수사?=수사팀은 물론 검찰 수뇌부는 사건 초기부터 “정말 골치 아프고 하기 싫은 수사”라고 토로해 왔다. 수사팀 관계자는 “여기저기서 변호사 개업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수사를 중간에 접고 싶은 심경”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검찰이 상황에 떼밀려 수사에 나선 흔적이 없지 않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와 형사1부 등은 이미 지난해 7, 8월 다른 사건으로 김 씨를 조사하면서 “김모 검사에게 1000만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김 씨가 물증을 내놓지 않아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김 씨의 법조 비리 사건을 본격 수사하게 된 것은 8개월여가 지나서였다.

검찰은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김 씨에게서 하이닉스 출자전환 주식 편법 매입을 돕는 대가로 수억 원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이 보좌관의 오피스텔과 김 씨의 구치소 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쓴 편지와 진정서 등을 발견했다. 편지와 진정서 등에는 김 씨가 현직 검사 등에게 돈을 건넸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사법연수원 28기 괴담=김 씨에게서 사건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받은 김 전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사법연수원 28기 출신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이번 사건에 앞서 지역 유지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법복을 벗은 전 군산지원 판사 2명이 모두 연수원 28기이기 때문.

2003년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카메라 사건을 수사했으나, 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던 김도훈 전 청주지검 검사도 연수원 28기다.

연수원 28기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300명에서 500명으로 크게 늘어난 1996년에 사시에 합격한 세대다.

▽김 씨 사건 변호인들 줄줄이 사임=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당초 김 씨의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 줄줄이 사임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김 씨 측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마땅한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다.

김 씨가 자신이 사건 청탁을 했던 판사들의 이름을 줄줄이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자칫 김 씨의 사건을 맡았다간 법원에 ‘찍힐’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신뢰 회복위해 아픔 감수해야”법조계 자정 목소리

조모 전 고법부장 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7일 법원 내에서는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한 가운데 검찰의 수사에 반발하는 분위기도 간간이 엿보였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조직 전체가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 슬프지만 이럴 때일수록 법원은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법 금산군법원 유재복(53·사법시험 24회) 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건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오만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알선수재나 뇌물과 같은 혐의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은데 검찰이 언론을 교묘히 이용해 마녀사냥 식으로 이번 사건을 몰아가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신경전을 멈추고 양대 사법기관의 자정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공보이사는 “판사나 검사가 일반인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사적인 접촉 자체를 금지하는 등 법조인에게 더욱 엄격한 윤리 기준이 적용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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