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가족여행… 꿈같은 시간… 꿈이 이뤄졌어요”

  • 입력 2006년 6월 2일 16시 02분


정진선(36·여) 씨는 15일 경기 안산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코시안의 집'으로부터 제주도 여행의 꿈이 이뤄졌다는 얘기를 들곤 마음이 들떴다.

(주)한국야쿠르트의 '사랑의손길펴기회'가 주관하고 '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과 본보가 함께한 '꿈은 이루어진다' 행사의 일환으로 25~27일 코시안 두 가족과 저소득층 7 가족에게 제주도 여행 기회가 주어진 것.

여행 당일 정 씨는 아들 정성훈(13) 군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방글라데시인인 전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정 군은 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7세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매우 내성적이다. 정 군은 태어난 직후 보정용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눈이 한 가운데로 몰리는 병도 앓고 있다. 또 피부색이 검어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냐"며 정 군을 따돌리기 일쑤다.

정 씨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일하다 만난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근로자 닐 삼바트(31) 씨와 2005년 3월 재혼했다. 삼바트 씨는 2003년 한국에 와 악착같이 일했지만 월 50만 원도 안 되는 임금과 사장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2004년 이 센터를 찾았다.

삼바트 씨는 "결혼할 때 돈이 없어 서울의 놀이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삼바트 씨 부부는 하루 10시간여 넘게 함께 일해 한달에 150여만 원을 벌기 때문에 가족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생애 첫 가족여행에서 삼바트 씨 가족은 푸른 바다와 야자수 등 이국적 풍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들은 드라마 '올인' 촬영지인 섭지코지와 여미지식물원 등을 둘러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제주도의 모든 모습을 담으려는 듯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랑의손길펴기회 자원봉사자들은 "신혼여행을 오신 것 같다"고 말을 건넸다.

삼바트 씨는 열대식물을 보며 "고향에서 흔한 나무들을 보니 마치 집에 온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정 군은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고 자원봉사자들과 어울리면서 정 군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 군은 다른 코시안 가족인 베트남 출신 엔티록구이(40·여) 씨의 아들 손한풍(10) 군을 비롯해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장난을 치며 섬이 떠나갈 듯 웃었다.

이날 밤 정 군은 장기자랑 시간에 가장 예쁜 '여장 어린이'로 뽑혀 난생 처음 주인공이 됐다. 정 군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김범준(29·한국야쿠르트 강북지점 성북영업소 종암직영점) 씨는 "일이 바빠 처음엔 참가를 망설였다"며 "나를 삼촌처럼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외국인근로자와 혼혈인도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가족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삼바트 씨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한국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면서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내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잊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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