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여성이 경쟁력이다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21분


호주제 폐지는 몇 해 전만 해도 실현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 철옹성처럼 호주제 폐지만은 허용하지 않을 듯했다. 폐지론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재혼가정의 문제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혼이 늘면서 학교에서 아버지와 성이 다른 아이들이 놀림과 눈총을 받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아이의 눈물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지 않느냐는 호소가 여론을 서서히 움직였다.

시대의 조류를 보는 듯하다. 호주제가 차별이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도 요지부동이던 여론이 확 바뀐 걸 보면 ‘감성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이혼이 다수의 문제로 바뀐 현실도 호주제 폐지론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호주제라는 거대한 벽 앞에 번번이 좌절하면서 감성적 접근이라는 새 전략을 깨우친 여성계의 역할이 돋보인다.

▼‘핑크칼라’ 요구하는 사회▼

호주제 폐지를 계기로 여성 문제의 관심사는 사회운동과 불평등 해소라는 오랜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아직도 불만이 많겠지만 여성 입장에선 최대의 장애물이 치워진 셈이다. 훨씬 차분하게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남녀평등 문제는 앞으로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출산율은 1.17명이다. 한 부부가 아들과 딸 중 하나를 낳아 기른다는 걸 의미한다. 아들 선호사상이야 사라지지 않겠지만 평등 문제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높아진 평등의식도 긍정적 요인이다. 최근 각계에 여성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이런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다. 내 딸만큼은 나처럼 키우지 않겠다는 한국 어머니들의 한(恨)이 높은 여성교육 열기로 이어지고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

새 패러다임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국가경쟁력을 위해 여성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20세기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골드칼라’와 ‘핑크칼라’의 시대라고 한다. 골드칼라란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인을 말하는 것이고, 핑크칼라는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을 갖춘 여성인력을 뜻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도 감성이 결여되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벌써 와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여성을 활용하지 못하면 경쟁에 앞설 수 없다. 구체적으로 여성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고 여성에게 어떤 제도적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가부장 이데올로기 같은 이념을 따지고 있을 시기는 지났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역차별 불만에도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여성 채용이나 발탁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나 일시적인 선전효과를 위해 이뤄지는 것은 여성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고 결과로서 평가받는 ‘게임의 룰’을 함께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한걸음 나아가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야심 찬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 그만큼 국가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다.

▼도전하는 여성에 박수를▼

대학과 기업은 여성교수와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해당 분야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고급 여성인력이 특정 분야에 편중됐던 것은 다른 쪽에 남성들이 쌓아놓은 벽이 워낙 높았던 탓이다. 여성적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에 우수 여성인력이 같은 분야에 모여 있는 것은 낭비다. 새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지는 여성이 더 늘어나야 한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을 위한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여성들은 실력으로 당당하게 승부하고 남성은 그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앞으론 여성의 경쟁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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