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긴장과 충격의 ‘28분’

  • 입력 2004년 10월 21일 18시 25분


21일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에서 방청객들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결정문 낭독을 긴장된 표정으로 듣고 있다. -공동취재단
21일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에서 방청객들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결정문 낭독을 긴장된 표정으로 듣고 있다. -공동취재단
▼긴장과 충격의 ‘28분’…헌재 결정 막전막후▼

“주문(主文).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헌법에 위반된다.”

21일 오후 2시28분. 윤영철(尹永哲) 헌법재판소장이 헌재가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음을 밝히자 방청석에서는 낮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헌법소원 청구인측 대리인석에 앉아 있던 이석연(李石淵) 변호사와 이영모(李永模) 변호사는 웃음 띤 얼굴로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축하의 악수를 나눴다. 반면 방청석에서 선고 결과를 지켜보던 정부측 변호인단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윤 소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정확히 28분간 긴장된 모습으로 결정문 요지를 낭독했다. 특별법이 헌법 130조2항을 위반한 것이라는 다수 의견은 물론 헌법 72조 위반이라는 김영일(金榮一) 재판관의 개별 의견, 위헌이 아니라는 전효숙(全孝淑) 재판관의 의견도 요약해 설명했다.

윤 소장은 중간 중간 목이 타는 듯 몇 차례 물을 마시기도 했으며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주심인 이상경(李相京) 재판관은 결정문이 낭독되는 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윤 소장은 특히 재판관들의 위헌 및 각하 의견을 먼저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밝히는 ‘주문’을 읽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대리인단과 방청객 모두를 끝까지 숨죽이게 했다.

헌재는 올 5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선고 때도 이런 방식을 택했다. 이는 헌재 결정의 이유를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것. 선고 과정을 방송으로 생중계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상경 재판관은 이날 퇴근길에 ‘의외의 결과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대로 했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 위헌 결정의 기준이 됐던 ‘관습헌법’ 개념에 대해 “헌법에 있는 개념이며 끊임없는 토론을 거쳤고 수많은 국내외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결정으로 정책 혼선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받아넘겼다.

유일하게 각하 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은 소감을 묻자 “결정문에 나와 있다”는 말만 남기고 헌재를 나섰다.

앞서 헌재는 선고 이후 “결정문대로만 이해해 달라”며 별도의 설명이나 의견을 내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편 선고 전 “위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으면 헌법소원을 내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던 이석연 변호사는 선고 후 “이제 수도 이전 문제는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측 대리인인 오금석(吳金錫) 변호사는 “법 이론적으로는 소수 의견이 타당하다고 본다. 상당히 유감”이라고만 짧게 언급했다.

한편 헌재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서 결정문 낭독 이후 퇴정하자 일부 방청객들은 환호성을 터뜨렸으며 수도 이전 반대 국민연합 회원들은 ‘국민의 승리’라고 쓴 종이를 꺼내들기도 했다.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전효숙 재판관 “국회서 다수통과 특별법 인정해야”▼

헌법재판소 전효숙 재판관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9명의 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특별법에는 위헌적 요소가 없고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된 바도 없어 각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 재판관은 헌법 개정 과정에 필수적인 국민투표권(헌법 130조)과 국가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권(헌법 72조)을 침해했다는 다른 재판관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먼저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며 수도의 위치는 이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해 헌법제정권자나 개정권자가 반드시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이어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에서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전 재판관은 나아가 “설혹 서울이 수도라는 것이 관습헌법이라 할지라도 관습헌법은 국민의 명확한 뜻이 헌법제정 절차를 통해 나타난 성문(成文)헌법과 달라 그와 똑같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의 진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기관인 국회가 특별법을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시켰다면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국가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여부를 결정하는 대통령의 재량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으로 사안에 따라 재량 여부가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직접 부여한 권한이어서 행정법상의 법리인 재량권 일탈 남용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거액의 수도 이전 비용 부담에 따른 납세자 권리 및 재산권 침해, 수도 이전 지역 이외 지역 주민들에 대한 평등권 침해 등도 자기관련성이나 직접성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해 침해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전 재판관은 밝혔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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