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위 성매매 사례공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입력 2004년 5월 17일 18시 56분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박모양(18)은 2002년 가출한 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다방에 전화를 걸었다.

몇 푼 되지 않는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살던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 드리려 일을 시작했던 것.

그러나 실제 생활은 광고와 달랐다.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노래방 단란주점 등으로 이른바 ‘티켓영업’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박양은 당장 일을 그만두려 했지만 지각비 등의 명목으로 진 빚이 1000만원에 달하자 이 다방 저 다방으로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박양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불가능했다.

지난해 12월 업주의 주선으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의 회식 자리에 불려나간 박양은 이곳에서 술을 따르고 옷을 벗으라는 경찰의 요구를 받았던 것. 경찰과 업주의 유착관계를 눈치 챈 박양은 급기야 1월 국무총리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보위 청소년보호종합지원센터(지원센터)는 17일 ‘성년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티켓다방 등에 팔려나가는 청소년의 성매매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이날 정부중앙청사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6명의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나와 자신의 피해 경험담을 직접 털어놨다.

지난해 9월 설립된 지원센터는 지난달까지 238건의 상담을 받아 그 중 65건의 청소년 피해 사례를 해결했다. 이 중 83%(54건)가 티켓다방에 고용된 청소년들.

박양 외에도 △이혼한 부모의 무관심 속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차 배달을 시작했다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인이 된 후에도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며 선불금을 갚으라고 협박당하는 등의 사례가 접수됐다.

특히 경찰이 공개된 장소에서 조사를 진행해 진술을 어렵게 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업주와의 합의를 종용하는 등 피해 청소년에게 이중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원센터는 밝혔다.

지원센터 정미정 긴급구조팀장은 “업주가 경찰과의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이들 청소년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경찰은 홍보포스터만 붙여놓지 말고 실질적인 단속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