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탈출 희망은 있다]<上>사회서 버려진 新빈곤층

입력 2003-12-03 18:55수정 2009-09-28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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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천형(天刑)인가. 7월 인천에서 자녀 3명과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한 30대 주부의 유서엔 가난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우리 사회는 자식까지 죽음으로 내몬 주부의 비정함에 넋을 잃었다. 가난을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쉬운 게 오늘의 현실이다.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곤 한다. 이 늪을 헤치고 나와 희망을 찾는 이들은 그래서 값지다. 본보는 가난의 고리를 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자활을 돕는 사회연대은행과 공동으로 오갈 데 없는 빈곤층의 현실과 자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얘기 등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한다.》

“아침이 두렵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은 더 절망적이다.”

산골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강석기씨(가명·62·서울 중랑구 면목동)는 가난의 대물림이 지독하게 싫었다. 그래서 담배는 물론 술도 입에 대지 않고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강씨는 요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근로 능력도 있고 20대 아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신빈곤층의 비애인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절대빈곤층과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인 잠재적 절대빈곤층(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인구는 456만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매달 생계비가 지원되고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136만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

그러나 이 통계에는 최근 급격히 몰락한 중산층, 즉 신빈곤층이 빠져 있다. 대부분 신용불량자여서 소득 파악조차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씨 역시 마찬가지다.

강씨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중산층이었다. 당시 공직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 7000만원으로 속셈학원을 차렸다. 그러나 경험이 없던 탓일까. 수강생은 모이지 않았고 한푼 두푼 돈만 까먹다가 1년반 만에 거짓말처럼 돈이 바닥나 버렸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빚을 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일 줄이야….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25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정수기 방문판매업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채를 끌어 썼다. 결제일이 되면 여러 장의 카드로 돌려 막기를 거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사무실의 셔터를 내리고 말았다.

1999년 말 강씨는 경기 시흥시에 있던 집을 내놓아 빚잔치를 했다. 그래도 6000여만원의 빚이 남았다. 재기의 일념으로 정부의 지원자금을 알아보고 직장을 구하러 다녔지만 ‘신용불량자는 안 된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씨는 지금 서류심사를 하지 않는 아파트 경비, 청소용역 등 일당을 받는 ‘잡일’을 주로 한다. 그나마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일주일에 며칠은 공친다. 임금도 다른 사람의 통장을 통해 받는다. 강씨의 통장에 입금되면 은행에서 바로 빼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을 못 받아도 항의할 수가 없다.

강씨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 최근 3년 만에 3000여만원의 빚을 갚았다. 머지않아 다 갚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강씨는 절망스럽다는 표정이다. 아들이 서너 번 술김에 다른 사람을 때려 경찰서에 불려 다녀야 했다.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아들은 술만 마시면 증세가 도진다. 매달 20여만원씩 드는 병원비도 문제지만 아들이 써버린 3000여만원의 신용카드 빚을 갚는 것도 걱정이다. 현재 월세 20만원도 내기 힘든 상황인데…. 강씨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신빈곤층이 재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것. 대체로 신용불량자로 묶여 있기 때문에 대출, 예금 등 모든 거래가 정지된다. 자활을 지원하는 정부의 프로그램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절대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으로 떨어져 우리 사회의 짐이 되고 만다.

김정민씨(가명·47·경기 안양시 안양3동)는 96년까지만 해도 사무실 직원 20명에 연 매출액이 100억원가량 되는 토목업체의 사장이었다. 재산만도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이 10억원에 이르렀다. 연봉이 1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하청을 주던 대기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자금이 말라버렸다. 백방으로 돈을 수소문했지만 97년 10월 회사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빚만 20억원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비롯해 모든 재산을 처분했다.

사람이 가장 먼저 떠났다. 도움을 청할 상대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하청업체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며 사기혐의로 고소를 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다. 채권자들의 집요한 추궁에 정신은 갈수록 황폐해졌다.

다행히 아내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10년 넘게 살림만 하던 아내는 유치원에 임시교사로 취직해 생계를 책임졌다. 내가 가장인가. 자신을 향한 학대는 그치지 않았다. 채권자들마저 “여기서 돈을 받아내기 힘들 것 같다”고 철수할 정도였다.

2년 전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가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하지만 신용불량자여서 기대했던 정부의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김씨는 여기 저기 알아본 끝에 우선 현금을 쥘 수 있는 대리운전 업체에 취직했다. 매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취객의 차를 몰고 받는 일당은 6만∼8만원. 그 역시 은행 통장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김씨에겐 2남1녀의 아이를 위한 사교육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김씨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자신은 괜찮지만 못난 아버지 때문에 아이들마저 가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을 따름이다.

얼마 전 김씨는 좋은 사업계획이 떠올랐다. 초기 창업자금이 1500만∼2000만원이면 되는데…. 어찌 보면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주변에 도움의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 김씨는 세상이 꺼질 듯한 한숨만 내쉰다.

“이대로 두면 저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추락하기 전에 제발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재활 지원 사업 문제점▼

국내에서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신빈곤층을 타깃으로 창업과 자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2년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생업자금융자사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신빈곤층을 상대로 가구당 최고 1200만원까지, 담보가 있으면 2500만원까지 빌려준다. 복지부는 2001년부터 자활공동체의 점포임대지원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노동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부터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장기실업자와 실직여성가장을 대상으로 점포임대지원사업을 실시 중이다. 또 중소기업청은 99년부터 소상공인지원센터를 통해 소상공인이나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자금융자와 창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저런 지원자금을 모두 합치면 연간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지원 방식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의 지원방식은 낚시 도구만 던져주고 낚시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상공인지원센터의 경우 창업과 경영지원을 위한 전문상담사가 배치돼 있고 창업희망자가 원하면 창업과 경영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에서 이런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기관의 특성상 대부분 돈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혹시 ‘까먹는 것’은 아닌지 감독하는 게 고작이다. 사업계획서의 타당성을 검토할 때도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또 각종 기금의 예산이 매년 다르기 때문에 과감한 운용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시군구에서 운영하는 기초생활보장기금을 보면 올 8월 현재 적립된 기금은 837억원이지만 같은 기간 지원된 금액은 3.35%인 28억원에 그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원금 손실 우려가 없는 점포 전세금으로만 소폭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융자 서비스의 문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생업자금을 원하는 지원자가 융자 대상자로 판정이 났더라도 보증이나 담보 등 금융기관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소용없다. 일부 기금의 경우 5%대의 높은 이자율도 부담이 된다.

신용불량자에 대해 이유를 불문하고 지원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지원대상자를 선정할 때 과거의 신용상태를 참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신용불량자에게도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정부의 창업지원사업 현황
사업대상내용주관
생업자금융자사업절대빈곤층, 차상위계층신용 1200만원 이하담보 2500만원 이하보건복지부(시군구)
점포임대지원사업자활공동체자활공동체당 5000만원 이하보건복지부(시군구)
장기실업자, 실직여성가장7000만∼1억원 이하노동부(근로복지공단)
소상공인사업자금융자소상공인,영세사업자5000만원(보증 또는 담보 필요)중소기업청(소상공인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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