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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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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 20, 30대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낸 ‘혁명’이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매개로 해 이뤄진 네트워크와 길거리 응원, 촛불시위 등으로 표현된 행동방식은 그들만의 독특한 세력화를 이뤄냈다. 반면 선거결과는 이런 흐름과 유리돼 살아온 기성세대는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20, 30대가 이룩한 성과를 어떻게 우리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삼을 것인가, 또 세대간 공존을 위한 방안은 없는가. 20, 30대와 40대, 50대를 대표하는 3인의 좌담을 통해 세대갈등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알아보았다.
23일 오후 본사 회의실에서 이뤄진 ‘세대간 좌담’에는 안경환(安京煥·54) 서울대 법대 학장, 조대엽(趙大燁·42)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기식(金起式·36)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참석했다.》
▽안경환 학장〓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겠으나 그중 세대간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 듯하다.
▽조대엽 교수〓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별 차이를 ‘갈등’이라고까지 봐야 하는가에 대해선 회의가 든다. ‘차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특수한 조건에서 세대 변수에 이념, 지역 등이 중첩됨으로써 갈등적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라 보고 싶다. 이번 대선에서는문화적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20, 30대 세대의 특징은 ‘정치의 문화화’를 이뤘다는 점이다. 서구의 N세대의 특징이 탈정치화된 문화세대라면, 한국의 경우 이번 대선은 80년대 민주화 주도 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합작품이다. 정치라는 이슈를 문화적 토양으로 끌어들여 문화적으로 접수한 세대다.
▽김기식 사무처장〓이 세대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노선에서 일관된 흐름을 갖지 않으며 때로는 모순적이기조차 하다. 레드콤플렉스뿐 아니라 집단주의 국가주의 등에서 자유로운 반면 월드컵 거리응원이나 반미시위에서 보는 것처럼 강한 민족주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20, 30대의 변화 욕구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에너지를 누군가가 어떤 방향으로 수렴하면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은 가능했다. 일단 노무현 당선자가 거기에 성공한 거다.
▽조〓지난번엔 스포츠, 이번엔 대선으로 그들의 욕구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이들이 문화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대상의 폭이 대단히 넓다.
▽김〓북한 미사일 나포사건이 터졌을 때 50대가 북의 위협을 느꼈다면 20, 30대 사이에는 ‘미국 음모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이들은 한미관계의 평등성을 바라며 북을 현실적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다. 한미관계의 평등성 요구가 20대까지 퍼진 계기는 월드컵이었다고 본다.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민족적 자긍심이 훼손되자 평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한 것이다.
▽안〓지난 월드컵에서 한국이 4위를 한 것이 ‘민족적 자긍심’이라면 이는 허점이 있는 것 아닌가. 월드컵 4위는 실력 덕이라기보다 ‘족집게 과외’에 성공한 것이었다. 한미관계나 여중생 치사사건의 경우도 좀 더 많은 정보와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급한 한미간 대등관계요구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고 있다.
▽김〓동의한다. 그러나 20, 30대에게 전통적 한미관계에 대한 입장은 안 먹힌다. 노 당선자도 가장 어려운 지점이 이런 대목일 것이다. 현실과 대중적 요구간의 괴리 사이에서 정치적 입장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위험한 민족주의적 요소도 없지 않다.
▽안〓근대사에서 새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역사를 자신이 창조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의 경우 새로 참여한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이는 독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김〓과거 2000년 낙선 운동, 월드컵 응원, 반미시위 등이 폭발적 양상을 띤 것은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제도적으로 수렴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단절적 조치는 인적 쇄신에서는 불가피할 것이고, 정책에서는 현실과의 조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그런 면에서 새 정권에 대해 홍위병을 내세운 문화혁명론이나 포퓰리즘 등의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 국한시켜 얘기한다면 권력 핵심 교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 문제는 새 정권을 지탱해주던 저변의 힘들이 그 힘을 지속적으로 확대시키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대단히 중대한 세대간 갈등과 단절이 나타날 수 있다.
▽조〓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을 듯하다. 세대간 균열은 지역이나 진보·보수의 균열보다는 해소하기 쉽고, 단절적 측면이 있다면 연속적 측면도 있다. 중간세대들이 단절을 연속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김〓이 기회에 탈냉전적 정치사회체제 구축을 해야 한다. 20, 30대는 북핵 문제를 북의 위협이라고 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본다. 이미 냉전 체제가 붕괴한 것이다. 리더십 문제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하의 지체된 리더십 교체가 다시 추진될 계기가 마련됐다. 리더십 교체가 또다시 지체된다면 한국사회에서 ‘비틀림 구조’가 생길 것이다.
▽조〓이 지점에서 포퓰리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10여년 이상 시민사회 내에 뿌리박아온 시민단체(NGO)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시민단체에는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이 대중과 지식인을 직접적인 공간에서 연결할 수 있는 중간집단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구처럼 시장과 기업, 정부, 시민사회가 상호 교호적으로 작동되는 ‘가버넌스’ 체제가 적극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안〓몽테스키외가 내세운 3권분립론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기존 입법, 사법, 행정을 하나로 묶는 제도권력과 자본의 권력, 미디어의 권력의 ‘신 3권 분립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신3권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시민단체와 같은 제4의 권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 시민단체들이 제도권과 결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지면서 ‘홍위병’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기성세대는 NGO가 과연 대중과 엘리트의 균열을 메워줄 수 있는 중간집단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김〓NGO로서는 DJ정부기간이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보수적 시각을 지닌 외부에서는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고 비판했고, 또 젊은 세대들에게서는 중립성을 지킨다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한국의 현실정치상황에서는 현실 정치세력간에 중간적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권력관계만 두고 본다면 정부와 시민단체는 대립하지만 공익이라는 측면에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다. 정부의 한계를 시민단체가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민단체의 문제점은 폐쇄적이라는 데 있다. 시민단체가 1980년대 말 이후 사회에 진출한 30대에 의해 주도됐다면, 이제는 연속성을 위해 20대와 10대에게도 개방돼야 한다. 이념적 측면도 상대적으로 다양해질 것이다.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보수적 시민단체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김〓20, 30대가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가는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40, 50대다. 관건은 40, 50대가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20, 30대의 요구를 어떻게 수렴하느냐 하는 것이다. 40, 50대가 이를 위해 탈냉전적 개방형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20, 30대와 60대 이상 세대간의 간격은 너무 뚜렷하다.
▽조〓결론적으로 세대 격차는 문화적 격차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정치의 문화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당 구조를 대폭 혁신해야 한다. 좀 더 시민들에게 접근하는 정당이 돼야 하고 정당 조직도 축소해야 한다. 인터넷 정치, 미디어 정치에 적응할 수 있는 정당조직으로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시민단체는 개방성을 높이는 한편 세대간 통로로서 기능해야 한다. 또 신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한 문화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배려를 보여야 한다.
▽안〓전체적으로는 이번 변화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좀 더 민주적으로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교체될 때마다 항상 발전적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의 승리는 개인적 성공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사적 부분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재벌, 언론, 대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구태의연한 리더십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서영아·권재현기자 sya@donga.com
▼20-30代 그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역으로 떠오른 20,
30대의 의식과 행태에는 하나의 세대적 성격으로만 규정짓기 어려운 복합적 요소들이 감춰져 있다. 그 안에서도 386세대와 신세대, N세대로 차별화되는 이들 세대에게 이번 선거가 동(同)세대적 징후로 받아들여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이번 선거가 국가지도자를 선택한다는 정치적 행위의 차원을 떠나 다음 시대를 규정할 ‘삶의 방식(modus vivendi)’을 선택한다는 가치 판단적 행위의 성격이 크다는 분석이다. 1987년 민주화이후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선택의 주요 판단요소로 지역감정을 제외시킨다면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20, 30대 세대에게는 ‘어떻게 사느냐’는 화두가 주요 담론이었다. 이들 세대가 주도한 인터넷상의 담론에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거나 ‘원칙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식의 구호가 많았던 점도 이를 반영한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교과서에서 배운 ‘삶의 원칙’과 현실사회를 지배하는 ‘생존의 법칙’을 합치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사회적 성공과 행복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바라는 욕구가 만났다”고 분석한다.
이들 세대의 민감한 정치 소비자의식도 상당한 작용을 했다. 소비자로서 이들 세대는 대량생산시대의 규격상품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의 개성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경기고(K)-서울대(S) 출신으로 항상 주류에 서 있던 이회창 후보가 KS마크의 상품이었다면 상고출신으로 늘 아웃사이더로 돌았던 노무현 당선자는 개성만점의 상품이었다. 이와 함께 월드컵을 통해 고양된 스포츠응원식 집단적 도취감도 이번 정치문화혁명에 단단히 한 몫 했다는 분석이 있다. 파편화됐던 이들 세대가 인터넷을 통해 결집되고, 나아가 월드컵응원과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단체화되고, 이를 통해 얻은 도취감과 자신감이 이들의 응집력을 더욱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