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귀농의 꿈' 깨진 이득만씨 부부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44분


이득만, 정윤자씨 부부가 21일 쓰레기로 변한 양란들을 보며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 김해=강정훈기자
이득만, 정윤자씨 부부가 21일 쓰레기로 변한 양란들을 보며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 김해=강정훈기자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난(蘭)들이었는데….”

21일 오후 황토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10여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한림배수장 인근 들녘.

양란을 재배하는 ‘이레농장’ 주인 이득만(李得滿·45)씨와 부인 정윤자(鄭潤子·42)씨는 본격 출하를 두 달여 앞두고 애지중지 길러온 양란인 심비디움 12만포기가 그 자리에서 내려앉아 말라비틀어진 현장을 둘러보며 허탈해했다.

질펀한 비닐하우스 바닥 곳곳에 나뒹구는 플라스틱 화분과 농업용 자재, 찢겨나간 비닐 등은 이곳이 화려한 모습의 양란농장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자동으로 물을 주는 관수시설과 겨울철 난방용 열풍기 등도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하우스 한쪽에 쌓아뒀던 퇴비는 온데간데없고 심한 악취만 진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5년 동안 근무했던 식품회사를 그만둔 이씨가 귀농(歸農)을 결심한 것은 97년 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들 부부는 “농사를 지어 돈을 번 뒤 제대로 선교활동을 해보자”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토마토와 꽈리고추 등을 재배하다 98년부터 2500여평의 농지를 빌려 8동의 하우스를 세우고 양란 재배를 시작했다. 은행 등에서 2억원을 빌리고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모두 양란 재배에 투자했다. 시행착오도 적잖게 겪었다.

그러나 날이 새기도 전에 하우스에 나가 하루 종일 양란 재배에 ‘애정’을 쏟으며 매달렸다. 김씨는 “교회에 가는 시간 외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과 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수천만원에 이를 정도로 양란 재배가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는 중국 수출과 국내 시장에 출하해 2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던 참에 예기치 않은 침수피해를 당한 것. 인근에 사는 노모(78)도 침수 소식에 몸져누웠다.

피해액은 줄잡아 10억원. 정씨는 “정부가 다른 종자를 파종하는 비용으로 1600만원을 준다는 데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 부부는 한림배수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물난리가 난 만큼 확실한 원인 규명이 될 때까지 못쓰게 된 양란과 하우스를 그대로 둘 참이다.

정씨는 “만약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피해 농민들을 위해서 이 한 몸을 던질 계획”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그는 또 수해의연금과 정부 지원금이 제때 지원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집마저 침수돼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는 이들은 ‘귀농의 꿈’이 좌절될지 모르는 재난 앞에서도 재기의 의욕만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적절한 지원만 해주면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요.”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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