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부문 개혁]부실社 정리 원칙따로 행동따로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37분


이달 6일 청와대에서 열린 4대 개혁 점검회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국제기관들이 한국경제가 옳은 길을 간다고 인정하면서도 개혁이 부진하다고 지적한다”며 먼저 기업개혁문제를 꺼냈다. 김대통령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상호지급보증 금지 △대주주 법적책임 강화 등의 성과를 든 뒤 “그러나 아직 국제수준에 경쟁력이 미달하는 기업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부실기업 신규자금 계속 지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작년말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기업개혁의 정책방향은 긍정하면서도 성과에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기업구조조정의 성과가 대체로 낮거나 매우 낮다’는 응답이 57.1%나 된 반면 긍정적 평가는 8.2%에 불과했다.

기업개혁과정에서 비교적 성공한 정책으로는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등과 함께 △회계 투명성 강화 △소액주주권한 강화 △부채비율 축소 등이 꼽힌다. 상당수의 민간전문가도 정부의 제도적 정비노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평점은 상당히 낮다.

논란을 무릅쓰고 정부주도로 이뤄진 현대전자의 LG반도체 인수 등 대규모 사업교환(빅딜)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작으로 꼽힌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인수 후 국제경쟁력이 강화되기는커녕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지금 우리 경제의 골칫거리가 됐다.

서울대 이천표(李天杓·경제학)교수는 “돌이켜보면 애초의 빅딜의도는 증발했고 빅딜 후 과잉투자 및 과잉설비문제도 해결 못했다”고 말했다. 인하대 장세진(張世珍·경제학)교수와 이화여대 전주성(全周省·경제학)교수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정면으로 어긋난 빅딜은 비효율만 낳았다”고 평가절하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혹독히 비판하는 것은 기업개혁의 핵심과제인 ‘잠재적 부실기업 정리’의 한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원혁(林源赫)연구위원은 287개 부실판정대상 기업 중 29개사를 법정관리 및 청산 등으로 퇴출시킨 작년 11월의 ‘11·3 퇴출조치’에 대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2년이 지났고 영업실적도 부진한 기업 중 일부가 청산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등 퇴출대상기업이 줄었고 부실기업에 신규자금이 계속 지원될 여지를 남겼다”고 분석한다. 좌승희(左承喜)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한꺼번에 ‘몰아치기식’으로 퇴출기업을 선정하지 말고 시장논리에 따라 그때그때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이에 따른 악영향은 다른 재정 및 금융정책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특히 현대와 대우문제 처리에서 보여준 무원칙과 처리지연, ‘특혜의혹’은 기업개혁의 명분과 효과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들 두 기업은 막대한 잠재부실에도 불구하고 현정부 출범초기 ‘잘 나가는 기업’이었고 현대의 경우 대북(對北)지원의 ‘재계 선봉장’이었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 의혹까지 받아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글 싣는 순서▼

1. 4대부문 개혁의 성과와 한계
2. 기업개혁의 현주소
3. 금융개혁의 현주소
4. 공공(公共)개혁 및 노동개혁의 현주소
5. 전문가들은 이렇게 본다

▼현대, 한보 전철 밟을수도▼

미국과의 통상마찰요인으로까지 번진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조치는 국내 시장 현실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1차 수혜기업 6개사 중 현대계열사가 4개나 포함되면서 ‘현대 봐주기’라는 비판이 수그러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대라는 ‘공룡’이 무너질 경우 한국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강조한다.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개혁의 명분도 좋지만 무엇을 위한 개혁이냐가 더 중요하다”며 “현대에 대한 지원과 대북사업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방송통신대 김기원(金基元·경제학)교수는 “시간을 끌다 부실을 더 키운 대우나 한보의 전철을 현대가 밟을 수도 있다”며 “편법은 편법을 확대재생산하고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장세진교수도 “대우와 현대처리 지연은 단기적으로는 문제해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숨겨진 부실을 뒤로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책 일관성 중요성 확인▼

이밖에 “워크아웃기업의 선정이 너무 느슨했고 지원조건이 좋아 워크아웃에 포함되지 않은 건실한 기업이 역차별을 받았다”거나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의 해외도피에서 드러났던 부실기업주와 이를 묵인한 경영감시자에 대한 처벌이 미흡해 구조조정의 공정성에 대한 노동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이만우(李萬雨·경제학)교수는 “대기업에 대한 무원칙이 중견기업 구조조정도 어렵게 만든 점을 반성하고 이제는 ‘구조조정의 예외 없는 원칙’을 반드시 지키고 금융기관이 시장원리에 따라 기업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천표교수는 “정부는 개혁과제로 천명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은 사정을 정직히 고백하고 장단기 과제를 구분해 차근차근 추진해야 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엄격한 자산 및 부채 실사를 거쳐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큰 기업은 대주주의 문책을 전제로 출자전환을 통해 회생을 지원하되 그렇지 않은 기업은 파산시키고 기업부실을 초래한 기업주와 이를 묵인하거나 유착한 회계법인과 정치인, 관료의 처벌 등을 주장했다.

<권순활·최영해기자>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