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미씨의 억류 5박6일]한때 집전화 기억못하기도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40분


정주영씨 민씨 위로
정주영씨 민씨 위로
민영미(閔泳美·35)씨의 ‘북한억류 5박6일’은 그의 귀환 이후 행동으로 볼 때 한마디로 ‘악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씨가 억류돼 있던 당시 현대측이나 정부측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대체로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5, 26일 귀환과정에서 민씨가 보인 행동은 “과연 그랬을까”하는 의문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귀환후의 민씨표정▼

25일 오후 북한 장전항을 빠져나온 민씨는 극도의 공포와 초조감을 보이며 ‘지옥’을 경험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북한 장전항에 파견나갔다 민씨와 함께 속초항으로 귀항한 서울중앙병원소속 의사 오명재(吳明宰·30)씨는 “장전항 출발 후 한동안 가만히 있던 민씨는 갑자기 ‘잘못한 것 없어요’ ‘용서해주세요’를 연발하며 덜덜 떨었다”고 전했다.

민씨를 후송한 현대상선 소속 예인선 KC31호 선장 허상원(許相源·40)씨도 “배에 올라 탄 민씨는 집 전화번호도 기억못할 정도로 혼돈의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의 행적▼

북한에서 민씨가 무슨 말을 했으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민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중앙병원 92병동 57호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서도 민씨를 조사할 땐 민씨 남편 송준기(宋準基·36)씨마저 내보낼 정도.

민씨가 북한에서 ‘공작원임을 자백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또 ‘신체적 위해(危害)’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민씨 담당의사 김성윤(金晟倫)교수는 27일 “민씨의 가슴과 허벅지에 작은 멍이 여러 개 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민씨는 조사과정에서 긴장해 실신하자 북측 관리들이 깨우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말했지만 민씨 주변에서는 ‘고문’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상훈기자·속초〓경인수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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