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잠깐만]김혜정/항구로 몰리는 실직자

  • 입력 1998년 7월 26일 20시 19분


이곳은 서해안 작은 항도. 며칠째 내리는 비로 모든 것이 젖었다. 그런데 젖는 것이 어찌 산과 나무뿐이랴. 직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항구를 찾았다.

익숙하지 못한 선원 일은 부상을 동반하기 마련. 공립병원 응급실을 찾아온 사람이 비와 피로 젖었다. 공립병원이라 해서 자선병원은 아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병원문을 닫아야 할 판. 나라사정도 어렵고 병원사정도 힘들기만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때 성장과 발전의 주역들. 이제 그 과실을 따낼만 하니 직장에서 내쫓긴 사람들. 젊은 날 밤과 낮을 직장에 묻으며 일해 왔건만 응급실 밖 쏟아지는 장맛비를 피하지 못했다. 이것이 경제를 위한 경제원리인지 사람을 위한 경제원리인지 분간 안되는 혼돈 속에서 구조조정의 집중된 칼날을 맞아 그들은 쓰러졌다. 마치 오랜 작업끝에 닳아버린 기계 부속품처럼 교체대상이 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정말 기계 부속품이 아니다.

세월이 가면 어린이는 자라 청년이 되고 젊은이는 늙어가겠지. 언젠가 좋은 날이 돌아올 터이지만 이 설움의 정체는 무엇인지.

김혜정(군산의료원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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