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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1246>且比化者하야 無使土親膚면…](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25/40600599.1.jpg)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왔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는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으나, 맹자는 망자를 위해 좋은 棺槨(관곽)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말려야 말 수 없…
![[한자 이야기]<1245>不得이면 不可以爲悅이며…](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22/40536033.1.jpg)
‘史記(사기)’ ‘淮陰候列傳(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소년 韓信(한신)은 하도 가난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한신은 가까운 구릉에 어머니의 시신을 묻고, 훗날 반드시 성공해서 그곳에 1만 가구의 인가가 들어차게 만들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100만의 군사를 지휘…
![[한자 이야기]<1244>曰 古者에 棺槨이…](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21/40501077.2.jpg)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오다가 제나라 남쪽의 영(영) 땅에 이르러, 제자 充虞(충우)와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우는 맹자를 위해 관 만드는 일을 감독했었는데,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
![[한자 이야기]<1243>孟子가 自齊葬於魯하고…](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20/40468825.1.jpg)
‘公孫丑(공손추)·하’ 제7장은 맹자가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제나라로 돌아오면서 제자 充虞(충우)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 맹자는 鄒(추)에서 태어났으나 조상이 노나라의 公族(공족)인 孟孫氏에게서 나왔으므로, …
![[한자 이야기]<1242>公孫丑曰 齊卿之位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9/40440655.2.jpg)
맹자는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등(등)나라에 弔問使(조문사)의 正使(정사)로 갔다. 이때 제나라 왕은 寵臣(총신)인 王驩(왕환)을 副使(부사)로 삼아 동행하게 했다. 그런데 왕환이 아침저녁으로 알현했지만 맹자는 한 번도 그와 사행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맹자의 제자 공손추는…
![[한자 이야기]<1241>孟子爲卿於齊하사…](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8/40404843.1.jpg)
‘公孫丑(공손추)·하’ 제6장은 맹자가 小人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려주는 일화이다. 맹자는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등(등)나라에 弔問使(조문사)의 正使(정사)로 갔다. 이때 제나라 왕은 蓋(합) 땅의 대부로 있는 王驩(왕환)을 副使(부사)로 삼아 동행하게 했다. 왕환은 제나라…
![[한자 이야기]<1240>公都子가 以告한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6/40345601.1.jpg)
성어 餘裕綽綽(여유작작)은 말이나 행동이 넉넉하고 침착함을 뜻하는데, 그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맹자는 齊나라 대부 지<(지와)가 靈丘(영구)의 邑宰(읍재)를 그만두고 士師(사사)가 된 지 서너 달이 지났지만 좀처럼 왕에게 直諫(직간)하지 않자 ‘아직도 간언할 수 없단 말인…
![[한자 이야기]<1239>지와가 諫於王而不用…](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4/40313519.2.jpg)
맹자는 齊나라 대부 지<(지와)가 靈丘(영구) 고을의 邑宰(읍재)를 그만두고 行刑(행형)을 맡아 보는 士師(사사) 벼슬을 청한 점에 대해서는 왕을 모시며 行刑과 관련해 諫言(간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도리에 맞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와가 사사가 된 지 서너 달이 …
![[한자 이야기]<1239>지와가 諫於王而不用…](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4/40313519.2.jpg)
맹자는 齊나라 대부 지<(지와)가 靈丘(영구) 고을의 邑宰(읍재)를 그만두고 行刑(행형)을 맡아 보는 士師(사사) 벼슬을 청한 점에 대해서는 왕을 모시며 行刑과 관련해 諫言(간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도리에 맞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와가 사사가 된 지 서너 달이 …
![[한자 이야기]<1238>孟子謂지와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13/40284695.2.jpg)
‘公孫丑(공손추)·하’ 제5장은 공직자나 정치가의 進退(진퇴)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관직을 내놓고 떠나라는 유명한 지침이 여기에 나온다. 齊나라 대부 지<(지와)는 靈丘(영구) 고을의 수령직인 邑宰(읍재)를 …
![[한자 이야기]<1237>他日에 見於王曰…](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08/40196573.1.jpg)
제나라 平陸(평륙)의 大夫 孔距心(공거심)은 흉년에 고을 백성들이 餓死(아사)하고 離散(이산)하는 것이, 처음에는 왕의 失政(실정) 때문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맹자가 남의 소와 양을 맡아 길러주는 사람의 예를 비유로 들어 대부가 왕의 백성을 맡아 기르면서 제대로 기…
![[한자 이야기]<1236>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면…](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07/40165288.2.jpg)
맹자는 平陸(평륙)의 大夫 孔距心(공거심)과 대화하면서, 흉년에 고을 백성들이 餓死(아사)하고 離散(이산)하는 자가 많은 것은 대부가 직분을 수행하지 않는 탓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때 공거심은 그것이 왕의 失政(실정)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맹자는 다시 남의 소와 양을 맡아서 길…
![[한자 이야기]<1235>然則子之失伍也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07/40136130.1.jpg)
맹자는 제나라의 변경에 위치한 고을인 平陸(평륙)으로 가서 大夫, 즉 邑宰(읍재)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맹자는 ‘그대의 창 잡은 병사가 하루에 세 번 대오를 이탈한다면 그를 버리겠는가, 그대로 두겠는가?’라고 물었다. 그 대부는 한 번만 대오를 이탈해도 遲滯(지체) 없이 그 군사를…
![[한자 이야기]<1234>孟子之平陸하사…](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05/40102950.1.jpg)
‘公孫丑(공손추)·하’의 제4장이다. 맹자가 제나라의 고을인 平陸(평륙)으로 가서 그 邑宰(읍재)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失政(실정)을 비판하고, 이후 제나라의 왕(제후)을 만나 평륙 읍재와의 대화를 언급하여 군주의 失政을 가만히 비판한 내용이다. 곧 맹자는 제나라의 지방관이나 군주가 …
![[한자 이야기]<1233>若於齊하여는…](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09/04/40066392.1.jpg)
맹자는 여러 제후국을 다니면서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제후의 신하가 되지 않고 賓師(빈사)의 자격으로 자문에 응했다. 그런데 齊나라 왕이 兼金(겸금) 100鎰(일)을 주었을 때 맹자는 받지 않았다. 兼金은 순도가 높은 금을 말한다. 하지만 맹자는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