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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7>仁智는 周公도…

    齊나라 宣王(선왕)은 연나라를 정벌한 후 2년도 안 돼 연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자, 맹자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보다 앞서 맹자가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녕,영)人(영인·아첨꾼)인 陳賈(진가)가, 성인

    • 201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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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6>曰 周公이 使管叔監殷커늘…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를 정벌하고 아예 병합하려고 하자 맹자는 ‘연나라를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연나라 사람들은 2년 후 태자 平을 왕, 즉 昭王으로 삼고 제나라에 대항했다. 제나라 왕이 맹자에 대해 부끄러

    •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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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5>陳賈曰 王無患焉하소서…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의 국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연나라를 공격해서 이겼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겨 연나라를 아예 병합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맹자는 ‘연나라를 완전히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연나라를 취하고 연나라를 취하여

    •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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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4>燕人이 畔이어늘…

    ‘公孫丑(공손추)·하’의 제9장은 제8장의 일과 연결된다.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齊나라가 燕(연)나라를 정벌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으나 뒤에 자신은 제나라에 정벌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以

    •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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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3>今에 以燕伐燕이어니…

    맹자는 변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송나라 유학자들은 맹자를 水精(水晶·수정)과 같다고 했다. 수정은 광채가 나지만 溫潤含蓄(온윤함축·따스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지님)의 맛이 없다. ‘公孫丑(공손추)·하’의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

    • 201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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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2>今에 有殺人者어든…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던 맹자에게 제나라의 신하 沈同(심동)이 燕(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는 그 왕 子쾌(자쾌)가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왕위를 사실상 남에게 물려주어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진 상태였다. 맹자는 연나라가 정벌당

    •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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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1>沈同이 問燕可伐與아 하거늘…

    맹자가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齊나라가 燕나라를 정벌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맹자가 제나라의 정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을 때 可하다고 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맹

    • 20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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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50>齊人이 伐燕이어늘…

    제나라 신하 沈同이 찾아와 燕나라를 정벌해도 좋은가 사적으로 묻자, 맹자는 燕나라는 정벌당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당시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왕위를 그에게 넘겼으므로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맹자는 연나

    • 201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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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9>有仕於此어든…

    맹자가 제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다.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나라를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맹자는 연나라 왕이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사실상

    •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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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8>沈同이 以其私問曰…

    ‘公孫丑(공손추)·하’ 제8장은 맹자가 齊(제)나라와 燕(연)나라의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해서 후대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당시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관한 諮問(자문)에 응하고 있었다. 이때 제나라 신하

    • 201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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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7>吾聞之也호니…

    맹자는 모친의 상에 훌륭한 棺材(관재)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다른 학파의 학자들이 맹자를 비난했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도 맹자가 사용한 棺材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맹자는 망자의 살갗이 흙에 닿는다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은

    • 201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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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6>且比化者하야 無使土親膚면…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왔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는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으나, 맹자는 망자를 위해 좋은 棺槨(관곽)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마

    •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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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5>不得이면 不可以爲悅이며…

    ‘史記(사기)’ ‘淮陰候列傳(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소년 韓信(한신)은 하도 가난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한신은 가까운 구릉에 어머니의 시신을 묻고, 훗날 반드시 성공해서 그곳에 1만 가구의 인가가 들어차게 만들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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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4>曰 古者에 棺槨이…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오다가 제나라 남쪽의 영(영) 땅에 이르러, 제자 充虞(충우)와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우는 맹자를 위해 관 만드는 일을 감독했었는데, 맹자가 사용한 棺

    • 201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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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이야기]<1243>孟子가 自齊葬於魯하고…

    ‘公孫丑(공손추)·하’ 제7장은 맹자가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제나라로 돌아오면서 제자 充虞(충우)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 맹자는 鄒(추)에서 태어났으나 조상이 노나라의 公族(공족)인 孟孫

    • 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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