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반드시 추억 속 가수에게 현재를 선사할 것이다.”(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새해를 맞아 음악계 전문가들에게 올해의 노스트라다무스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저런 예언이 난무했는데 서두의 저 문장이 뇌리에 콕 박혔다. 근래 유튜브와 음원 플랫폼의 자동 추천 알고리즘은 지금껏 …
유달리 콘서트가 적은 한 해였다. 올해 관람한 몇 안 되는 온·오프라인 콘서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있다. 월드 클래스 아이돌의 대규모 공연도, 젊은 래퍼의 신기한 메타버스 콘서트도 아니다. 이달 초 서울 마포구의 소극장에서 열린 유러피안 재즈 페스티벌 피날레 공연. 원격 연주…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이후 인간 연령 30세를 주제로 제작된 가장 강렬한 음악 작품이 아닐까. 영국 가수 아델이 지난달 6년 만에 낸 정규앨범 ‘30’ 말이다. ‘Rolling in the Deep’이나 ‘Someone Like You’ 같은 강력한 싱글이 없어도 좋다. 재생 버튼…
어느 겨울밤, 서울 마포구의 음악 바. 테이블 앞에 비치된 신청곡 용지로 손을 뻗는다. 알파벳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다. ‘Pat M…’ 여기까지 쓴다면 내 친구 Y는 아마 또 탄성을 지르겠지. “오, 팻 메시니! ‘Are You Going with Me?’ 들으려…
‘11월호 기사 <내가 사랑한 뮤직비디오>.’ 얼마 전 한 패션 매거진에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요청 공문의 저 첫 줄부터 살짝 설렜다. 세 편의 비디오를 추천하면 된다고 했다. 1980년대 이전, 1990년대, 2000년대 이후에서 각각 한 편씩 뽑고 고른 이유를 원고로 붙이는 …
‘스웨덴의 여름 공기는 어떤 질감일까.’ 8년 전, 첫 북유럽 출장은 가기 전부터 꽤 설렜다.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 7시간의 시차와 500cc의 맥주가 준 나른함이 오후 11시를 만나 마법을 부렸다. 그러니까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택시는 검은 밤 위로 미끄러졌다. 신기루처럼 …
‘밴드 ××, 새 싱글 앨범 17일 발매!’ ‘가수 ○○○, 여름 겨냥해 싱글 앨범 내놔’ 보도 자료나 인터넷 기사에서 자주 접하는 ‘싱글 앨범’이라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다. 애당초 싱글과 앨범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싱글은 …
서울 종로구 ○○로 ×××번지 임희윤 기장님♡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우편물을 뜯다 빵 터졌다. 발신인님의 거룩한 오타에 하루치 피로가 순간 삭제됐다. 기분 좋은 모음 ‘ㅏ’에 받침으로 ‘ㅇ’까지 깔리면 언제나 울림이 최고다. 아리랑도 그러하다. 더욱이 답답한 하루라면 기자보다 기장이 …
“출근하셨어요?” 한때 같은 분야 현장을 누비던 후배 J가 무려 2년 만에 보낸 메시지. 반가운 문자가 아침부터 휴대전화를 밝힌다. “당근이지!” 아직 비몽사몽이지만 사기충천인 척 0.5초 만에 답장…. “저 을지로에 있는데 그럼 광화문에서 커피 한잔?”이라고 묻는 후배가 죽을 만큼 …
‘흥분과 감동의 하이파이 사운드!’ 먼 옛날, 20세기의 신문과 잡지에는 이런 유의 광고 카피가 자주 실렸다. 블루투스 스피커 대신 가정용 전축이나 미니 컴포넌트형 오디오가 불티나듯 팔려 나가던 시대다. 하이파이(hi-fi)는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의 약자. 피델…
“저기, 저 흰색 띠는 무엇이죠? 지평선 너머 구름 위로 신기루처럼 떠있는….” 몇 년 전 어느 날 몽골의 고비사막. A의 물음에 현지 가이드 B가 덤덤하게 답했다. “알타이산맥입니다.” 며칠을 서쪽으로 더 달린 뒤, A가 다시 물었다. “여전히 저 멀리 보이는 것은 알…
이삿짐이라 쓰고 멍에라 읽기로 했다.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집 넓이를 약 50m²나 줄여서 왔다. 싸게 팔 때 신나게 쟁여둔 생활필수품을 둘 곳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난관은 낙오자 없이 죄다 고이 모셔 온 수천 장의 CD와 LP 음반 ‘님’들께서 기거하실 곳이었다. 테트리스 하…
D의 이어폰 줄은 귀에서부터 늘어뜨려져 주머니 속 워크맨에 연결돼 있었다. 그 하얗고 기묘한 링거는 시뻘겋게 생동하는 생명의 링거액을 중력을 거슬러 꿀렁꿀렁 D의 뇌에 주입하고 있었다. 약동하는 드럼과 절규하는 보컬…. 난생처음 맛보는 전압에 취해 D는 자신을 가둔 벽을 향해 달려가기…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만화 ‘레코스케’에는 여러 명의 ‘L자’가 등장한다. L자란 ‘판 환자’의 줄임말로서 LP 등 각종 음반을 모으는 데 지나치게 열중하는 지인들에게 내가 짓궂게 지어준 별칭인데 막상 당사자들이 더 즐거워하며 업계에 퍼뜨리고 있다. ‘레코스케’의 주인공은 레코드판…
“F*** you, I won‘t do what you tell me!”(‘Killing in the Name’ 중) 얼마 전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가두시위 영상 하나가 화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 일부가 록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TM)’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