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청문회’ CEO 불러놓고… “日 신사참배 갔었나” 황당 질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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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노위, 면박주기 논란

줄줄이 국회 불려나온 기업 CEO 9명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개최한 산업 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앞줄)가 단상 앞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증인석 첫줄 왼쪽부터 우무현 GS건설 대표이사,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둘째 줄 왼쪽부터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이사,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 대표,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이사,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최정우 포스코 대표이사 등 CEO 9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줄줄이 국회 불려나온 기업 CEO 9명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개최한 산업 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앞줄)가 단상 앞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증인석 첫줄 왼쪽부터 우무현 GS건설 대표이사,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둘째 줄 왼쪽부터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이사,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 대표,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이사,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최정우 포스코 대표이사 등 CEO 9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한번 보겠다. 도쿄에서 신사참배 가지 않았느냐.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22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된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엉뚱한 ‘신사참배’ 논란이 불거졌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포스코 최정우 회장이 일본의 한 오래된 건물 안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사진을 근거로 제시하며 신사참배 의혹을 제기했다. 청문회 증인석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9명이 앉아 있었다.

발언대에 나온 최 회장은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저건 신사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세계철강협회 총회에 갔다가 여유 시간에 도쿄타워 인근에 있는 절에 간 것”이라며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가는 곳”이라고 반박했다.

노 의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만든 포스코 회장이 신사참배 가서 머리를 조아린 게 잘한 것이냐”고 다시 공격했고, 최 회장은 “(사진) 상단에 보면 절 사(寺)자가 있다. 분명히 절이다. 신사가 아니다”라고 재차 반박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국회 청문회에 호출된 기업 대표들은 바싹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여야 의원들은 “산재 예방에 관심이 없는 탓에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9명의 CEO들을 질타했고, 대표들은 의원들의 공세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등 산재와 무관한 의혹이 제기되고, 일부 CEO들은 충분한 발언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서 원래 목적인 ‘산재 예방의식 고취’와는 동떨어진 청문회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의 공세는 최 회장에게 집중됐다. 최 회장이 ‘허리 지병’을 이유로 진단서와 함께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가 철회한 것을 여야가 한목소리로 비판한 것. 최 회장이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고 사과했지만,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그게 회장님의 인성”이라고 비판했고 같은 당 김웅 의원은 “주로 보험사기꾼들이 내는 진단서”라고 공격했다.

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포스코의 중대재해 원인을 묻는 과정에서 “증인은 포스코에서 노동자들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라고 날을 세웠다. 결국 최 회장은 “의원님 말씀 새겨서 무재해 사업장으로 만들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최근 택배 기사들이 잇달아 과로사한 쿠팡 측도 의원들의 공격을 받았다. 민주당 임종성 의원은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를 발언대에 세우고 “쿠팡은 산재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아 산재 인정을 방해했다”고 비판하면서 “한국 기업 대표는 한국어도 하셔야 한다”라고 ‘훈수’를 뒀다.

이에 네이든 대표는 “우리는 정말로 끔찍하고 가슴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유족 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 원인을 규정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특히 (사고가 아닌) 질환의 경우 전문가의 결정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택배 기사의 산재 인정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이 아니라 의료 전문가의 소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반박한 것이다.

여야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지자 CEO들의 ‘항변’도 터져 나왔다.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는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면 불완전한 상태와 작업자의 행동에 의해서 잘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CEO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더라도 작업환경과 작업자에 따라 불가피한 사고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불완전한 상태는 우리가 투자를 해서 많이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바꾸기)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마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해가지 못할 것 같다”고 경고했고, 다른 의원들도 “산재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한다”고 맹비난했다. 결국 한 대표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비정형화된 작업이 많다는 걸 말씀드린 것”이라고 진땀을 빼며 해명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산재 청문회#일본 신사참배#황당 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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