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회 요구땐 사찰문건 보고” 野 “DJ-盧때 사찰도 다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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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국정원 사찰문건 논란]朴 “前국정원 사찰문건 불법”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날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국회의원 등을 사찰했다는 문건에 대해 “직무범위를 이탈한 불법 정보”라고 규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날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국회의원 등을 사찰했다는 문건에 대해 “직무범위를 이탈한 불법 정보”라고 규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가정보원이 16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직무범위 이탈 불법 정보”라고 성격을 규정한 문건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2월 16일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지시로 18대 국회의원 전원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 방송인 등 각계 인사에 대한 동향을 담은 것이다. 여권은 이런 ‘불법 사찰 자료’가 청와대의 지시 아래 국정원이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 등이 보관하고 있는 개인 정보를 건네받아 불법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 ‘사찰 문건’ 누가 왜 만들었나

문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이 지난달 21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정원에서 제출받은 문건을 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엔 “2009년 12월 16일 민정수석실이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신상자료 관리를 (국정원에) 협조 요청한다” “VIP(대통령) 통치 보좌는 물론 대정부 협조관계 구축 및 견제 차원에서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신상자료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정 저해, 정치인 견제 차원에서 해당자에 대한 비리 정보 지원도 요청한다”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이날 정보위 전체회의 후 브리핑에서 이 자료를 인용하며 “민정수석실은 검찰, 국세청, 경찰 자료를 국정원에 지원하면 국정원에서 이를 DB(데이터베이스)화해서 자료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민정수석실에서 자료를 요청할 경우 보고서 형태로 지원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료를 이첩할 때는 ‘BH(청와대) 지원 정치인 신원자료’라고 말하지 말고 ‘단순 외부입수 자료’로 통보한다”는 문건의 문구도 소개했다.

하지만 문건엔 구체적으로 어떤 개인 정보들이 들어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한 민주당 정보위원은 “개인의 신상 정보뿐 아니라 대출과 같은 금융 기록, 심지어 호텔에 들어간 기록, 식당에 누구와 동행했는지 등 내밀한 정보가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문건이 도청이나 미행 등 불법적인 행위로 작성됐을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날 “도청이나 미행 등 불법 행위로 정보가 수집됐느냐”는 질문에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국정원은 “(당시 민정수석실로부터) 사찰 지시는 있었지만 문건 목록 및 내용에 대해서는 현행법 위반 및 정치 관여 논란이 일 수 있어 확인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 “박근혜 정부 때도 지속됐을 가능성”

여권은 이명박 정부 당시 시작된 국정원의 불법 사찰이 박근혜 정부 때에도 지속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 역시 이날 국회 정보위에 “불법 사찰 자료가 박근혜 정부 때에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됐을 개연성은 있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박 원장이 개연성이 있다고 표현한 데에는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4월 재·보궐선거 전 추가로 문건이 공개될 가능성을 놓고 여야 정치권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 문건을 두고 “불법성 없는 통상적인 정보 활동”이라는 반론도 나오지만, 사찰 혐의로 기소됐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들이 법원에서 잇따라 유죄 판결을 받고 있는 점이 큰 부담이다.

야당은 이날 정보위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 등 민주당 정권 시절 불법 사찰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선을 넓혔다. 야당의 압박에 국정원은 정보위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8년 2월 5일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 등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박 원장은 “개별 직원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김대중 정부 당시의 도청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 사건까지 모두 일관되게 정리하고 공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이 “‘60년 불법사찰 흑역사 처리 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야당의 주장을 맞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강성휘 yolo@donga.com·강경석 기자
#박지원#국정원#사찰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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