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건넨 ‘발전소 USB’… 與 “원전 내용 없어” 野 “내용 밝혀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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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전 건설’ 문건 논란]
평화의집서 文대통령이 전달… 당시 靑참모 “신재생에너지 관련”
청와대는 구체적 내용 안밝혀… 삭제 문건 靑보고 여부도 쟁점
보고용 ‘BH 송부’ 별도 표시 없어… 산업부 “경협 대비 아이디어 자료”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청와대가 북한에 원전 건설을 제의했는지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핵심 쟁점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의 청와대 보고 여부, 그리고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에 건넨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에 북한 원전 관련 내용이 담겼는지다.

○ 검찰, 靑 보고 여부는 수사 안 해

북한 지역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이 담긴 산업부 내부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됐는지를 대전지검이 반드시 수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앞서 감사원과 야당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혹’과 ‘산업부 공무원의 자료 삭제 의혹’에 대해서만 검찰에 수사 의뢰했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 김모 서기관의 옛 업무용 컴퓨터에서 북한 원전 건설과 관련된 문건 17건을 확보했다. 문건들은 모두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60 Pohjois(포흐요이스)’라는 폴더 안에 들어 있었다. 17건 중에 산업부의 내부 검토 보고서로 추정되는 건 총 2건이다.

이 중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제목의 보고서에 대해 산업부는 31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향후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산업부 부서별로 다양한 실무 정책 아이디어를 검토한 바 있다”며 “(이 문서도) 에너지 분야 협력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산업부 내부 자료”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이 문서가 총 6페이지로, “서문(序文)에 동 보고서는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해당 문서가 박근혜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문건이라고 밝히면서도,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진행 중인 산업부 공무원들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밝혔다.

검찰이 확보한 산업부 내부 보고서 2건에는 ‘BH(청와대라는 의미) 송부’ ‘청와대 산업비서관실 요청사항’ 등의 문구가 없었다. 북한 원전 관련 보고서의 경우 양식이나 내용이 산업부가 청와대에 보고용으로 작성한 문서와는 달랐다고 한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검찰에서 “삭제한 문건은 최종본이 아닌 중간 검토 자료”라는 취지로 항변했다고 한다.

김 서기관은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우선적으로 삭제했는데 2019년 12월 1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된 문건 500여 건을 먼저 지운 뒤 마지막으로 ‘북한 원전 건설’ 문건을 삭제했다. 공개된 검찰 수사 결과만으로는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정황이 없지만 산업부가 비공식 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문건 작성 시기는 2018년 5월 2일부터 15일까지였다. 1차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과 2차 정상회담(5월 26일) 사이다.

○ 靑 “USB메모리 전달은 맞지만 원전 내용은 없어”

또 다른 쟁점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메모리 안에 담긴 내용이다. 청와대는 “USB메모리에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건 맞지만 원전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란 태도다. 다만 청와대 역시 USB메모리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USB메모리에 담긴 자료는 무엇이었느냐”며 구체적인 내용 공개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판문점 회담이 끝난 직후에도 USB메모리에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30일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발전소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구두로 (발전소를) 논의한 적은 없지만 김 위원장에게 자료를 하나 넘겼는데 거기에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며 “‘한반도 신경제구상’ 책자와 PT(프레젠테이션) 영상을 (USB메모리에 담아) 김 위원장에게 건네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한기 당시 대통령의전비서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도보다리 현장에서 USB메모리를 건넸다는 보도에 대해 “거짓”이라며 “두 정상이 물밑 거래를 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연상시키는 악의적 왜곡”이라고 밝혔다. USB메모리는 공식 회담이 진행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전달됐다는 게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USB메모리에 담긴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DMZ(비무장지대) 환경·관광벨트 등 3대 벨트를 통해 남북 간 경제 협력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USB메모리 안에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관한 포괄적 내용이 들어가 있을 뿐, 원전의 ‘원’자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밝혔다.

판문점 회동에 관여했던 한 청와대 전직 참모는 “원전이 아닌 신재생 및 화력발전소 관련 내용일 뿐”이라고 했고, 당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이었던 민주당 윤영찬 의원도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 5·26 2차 남북 정상회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의 원전 건설은 단 한마디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고도예 / 세종=송충현 기자
#김정은#발전소usb#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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