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북한의 가족 위험” 유럽 머무는 탈북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2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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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미국보다 ‘중립국’ 이미지라 선호
대북제재로 난민 인정은 더 힘들어져
영국에만 700여 명 ‘무허가 체류’ 중

한국이나 미국이 아닌 유럽에 머물길 원하는 탈북자들이 있지만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난민 지위 신청 탈북자의 14%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EU 공식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EU에서 난민 신청 결과를 통보받은 북한인 수는 35명으로 이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북한인은 5명뿐이었다. 2016년 난민 신청 결과를 통보받은 북한인 45명 중 10명(22%)이 난민 인정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소폭 하락한 것이다. 지난해 EU에 난민 신청을 한 북한인 수 45명은 최근 10년간 가장 적은 수치다.

최근 아랍권의 알자지라 방송은 유럽 일부 국가들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중립국’으로 여겨지는 유럽에 남기를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부 유럽 국가는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추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탈북한 50대 초반 여성 최경애(가명) 씨는 중국 브로커를 통해 세 아이와 함께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하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거주 허가증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외국인 송환 여부를 심사하는 네덜란드 법무부 산하기관 ‘송환 및 출국 서비스’와 매달 면담해야 한다. 최 씨는 알자지라에 “(네덜란드 당국에서는) 내가 한국에 가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수용소로 가게 된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한다”며 “하지만 이건 문서로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답답해했다.

최 씨와 같은 해 네덜란드에 온 80대 여성 김은향(가명) 씨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미등록 이주민이다. 김 씨는 “내가 한국으로 가서 (북에 남은) 아들이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느니 여기(네덜란드)서 혼자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영국에 1300여 명의 탈북자가 있지만 544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네덜란드 거주 탈북자 91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25명뿐이다. 영국에 있는 북한인권단체 ‘커넥트 투 노스코리아’ 관계자는 알자지라에 “영국 내무부는 탈북자들이 한국에 가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탈북자들을) 난민 신청자가 아닌 이민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미국과 한국은 적으로 보는 반면 유럽은 중립국으로 여기기 때문에 많은 탈북자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유럽에 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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