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위주 구조조정… STX-성동조선 퇴출 유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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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년 상반기 1兆펀드 조성

국책은행과 채권단 중심으로 이뤄졌던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 중심 체제로 바꾸기 위해 내년 상반기에 1조 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된다. STX조선과 성동조선 등 중소 조선사 퇴출 작업도 일단 중단된다. 또 앞으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정할 때 일자리 감소의 타격을 직접 받는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을 두고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데다 또다시 무리하게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 지방선거 의식해 구조조정 손놓나

정부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과 조선업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위해 내년 상반기에 1조 원 규모의 공공-민간 매칭형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국책은행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이 중심이 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민관 합동 구조조정 펀드로 부실 채권을 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단순히 재무적 관점에서 부실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산업생태계 등을 고려하고 지역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울산과 경남 창원의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을 감안하겠다는 취지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출자한 회사에 대해서는 민간전문가 중심의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관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안이 사실상 국민 세금이나 공적 자금으로 한계기업의 파산을 막아왔던 지난 정부의 관행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휘청거리면 국책은행이 소방수로 나서는 모습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민간 자본의 투입이 예상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금처럼 국책은행의 긴급 자금이 들어간다. 대우조선해양처럼 덩치가 큰 기업이 부실화할 경우 마땅한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만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이용해 ‘연명치료’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위한 민간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형성될 수도 없어 국책은행의 역할은 당분간 지금처럼 간다”며 “장기적으로 민간 영역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사실상 구조조정 작업을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정부는 일자리와 지역 민심을 고려해 기업 퇴출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실기업이 청산과 지속 사이에서 헤매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채권 은행들이 떠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선박 수주 중국, 이탈리아 등이 싹쓸이

정부는 조선업 관련 대책도 내놨다. 김 부총리는 “생태계를 감안해 내년 초 조선업 혁신성장 추진 방향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일부 중견 조선사에 대해서도 외부 컨설팅을 거쳐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수주잔량이 급감한 성동조선과 STX조선은 구조조정을 유보하고 일단 외부 컨설팅을 거치게 됐다.

문제는 국내 조선업 상황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신규 수주 부진이 이어지면서 남은 일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8일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선박 발주량은 10월의 100만 CGT(표준화물 환산 톤수)보다 40만 CGT 많은 140만 CGT(58척)였다. 이 중 중국이 91만 CGT(47척)를 싹쓸이해 갔다. 이탈리아가 31만 CGT(2척)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중소 선박 3척만 수주해 8만 CGT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다만 선박 발주량은 일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 11월까지 전 세계 누적 발주량은 1951만 CGT(725척)로 지난해 같은 기간(1168만 CGT·536척)보다 783만 CGT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발주량은 다소 회복되겠지만 2022년 정도가 돼야 대형선박과 고부가가치 선박의 발주량이 과거 2011∼2015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일감 절벽에 따른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송충현·정세진 기자
#구조조정#문재인 정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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