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전에 바로잡아 다행” 찬성 주민-현장 근로자들 안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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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 6호기 건설 재개]

여기저기서 “휴” 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10명 넘는 사람이 모였지만 대화도 별로 없었다. 일부는 초조한 듯 눈을 감았고 일부는 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20일 오전 10시경 울산 울주군청 브리핑룸의 모습이다. 이들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울주군 주민들이다. 얼굴마다 신고리 5, 6호기의 미래를 정할 공론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가득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이 마침내 “공사 재개를 권고한다”고 발표하자 이들은 “와” 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마침내 김 위원장의 설명이 끝나자 주민들은 “10년 감수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도 있었다. 주민대책협의회 이상대 위원장(65)은 상기된 얼굴로 “무더위 속에 전국을 돌며 집회를 연 고생이 모두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안도와 환영,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

이 시각 울산시민의 관심은 공론조사 결과에 쏠렸다. 공사 재개를 찬성 또는 반대하느냐에 따라 곳곳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론화위원회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갈등을 매듭짓자는 바람이었다.

공사 재개 권고로 큰 걱정을 덜게 된 건 신고리 5, 6호기 공사현장 근로자들이다. 공사가 완전히 중단될 경우 대다수 일용직 근로자는 다른 건설현장으로 옮겨야 할 처지다. 이미 3개월가량의 중단 기간에 300명 가까운 근로자가 다른 현장을 찾아 떠났다.

이날 현장에는 근로자 850여 명이 출근해 삼삼오오 모여 발표를 지켜봤다. 휴대전화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여럿이 함께 발표를 듣는 모습도 보였다. 공사 재개 결정 직후 근로자들은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근로자 권모 씨(40)는 “만약 공사가 완전히 중단되면 해외 건설현장을 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며 “공사 재개 권고가 났으니 이제 근처에 가족이 함께 머물 집을 구해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철근반장인 송홍근 씨(60)는 “근로자 절반이 원전 건설현장에서만 일한 30, 40대 경력자”라며 “공사가 중단되면 이들의 앞길이 완전히 막힐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크게 줄어 속앓이를 하던 지역 상인들은 크게 반겼다. 일부 식당에서는 점심 손님들에게 공사 재개를 환영하는 의미로 음료수를 제공했다. 울주군 서생면에서 10년째 식당을 하는 우영옥 씨(60·여)는 “3개월 동안 아예 장사를 접고 전국으로 집회를 하러 다녔다”며 “이제 손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장열 울주군수는 이날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이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 유감과 실망, “공론화 기간 너무 짧아”

공사 재개를 반대한 단체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18일부터 울산시청 앞에서 철야 집회를 이어가던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는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오전에 열려던 기자회견을 3시간 늦췄다. 운동본부는 “공론화위 권고안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울산지역의 원전 수를 줄이는 데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주요 환경단체는 권고 내용을 수용하면서도 “탈원전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시민들의 숙의를 통해 내려진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결정과 별개로 원전 축소는 지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재앙과 같은 원전 사고를 겪으며 전 세계는 이미 탈원전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세계는 원전과 화석연료 대신 재생가능에너지로 몰리고 있는 만큼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변함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참여단이 공론화 기간 보여준 진중한 토론 모습과 판단을 존중한다”며 “다만 수십 년 간 온 국민이 핵 발전의 필요성과 안전성, 경제성 정보를 일방적으로 접해온 상황에서 공론화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찬반이 엇갈리는 환경 이슈는 공론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부안 방폐장(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나 밀양 송전탑처럼 국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반대파가 집단적으로 나서면서 충돌을 하게 된다”며 “이번처럼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어떤 의견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울산=황성호 hsh0330@donga.com / 정재락·김윤종 기자
#신고리#원자력발전소#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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