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정해야할 정부-국회, 사실상 방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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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시행령 모호한 규정… “통상임금 분쟁 키운다” 지적 나와
비정규직 등 다른 현안에 밀려… 法개정 제대로 논의조차 못해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통상임금의 정의와 기준을 법과 시행령으로 명확히 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모든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다른 노동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명확한 통상임금 정의 규정이 없다. 1953년 제정 당시 일본의 노동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 규정을 따로 만들지 않은 탓이다. 다만 시행령을 통해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이라고만 정해 놓았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정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시행령조차 모호하다 보니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2013년 12월 “정기적, 고정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고용노동부는 2014년 1월 이를 반영한 새 지침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6월에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5월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는다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법과 시행령도 없이 지침만으로 통상임금을 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 당시 제시한 ‘신의성실 원칙’도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 재산정 때문에 기업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직면한다면 과거 미지급분을 소급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관된 ‘중대한’ 기준이 없고 법원마다 판단이 제각각이라 혼란만 일으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사정(勞使政)은 2015년 9월 대타협 합의문에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통상임금의 개념 정의와 제외 금품 등의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정부는 대법원 판례대로 통상임금의 정의를 명시하고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구체적인 금품을 시행령으로 열거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대타협이 파기되고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대법원이 그 나름의 지침을 줬지만 사업장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 들쑥날쑥한 판결이 나온다”며 “사법부 해석에 의존하기보다는 국회와 정부가 사회적 공론화로 합의를 이끌고 구체적인 시행령을 만들면 혼란을 줄이고 해결의 방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양길성 인턴기자 중앙대 사회학과 졸업
#근로기준법#문재인 정부#통상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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