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익숙한 과거냐, 불확실한 미래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9일 2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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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선택할 텐가”
‘5년 전 네거티브’가 예언이라면 ‘노무현 시즌2’도 맞을 가능성
정책과 인사는 바꿀 수 있어도 대통령의 기질은 못 바꾼다
‘친노의 도구’와 한때 불쏘시개… 21세기 한국 누구에게 맡길 건가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국민은 ‘노무현 시즌 2’를 바라지 않는다.”

“불통하고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선택하겠는가.”

18대 대통령을 뽑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012년 11월 27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상대를 이렇게 비난했다. 유세 첫날부터 네거티브 공세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지금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견은 무섭게 맞아떨어졌다. “유신독재 세력의 잔재를 대표하는 박 후보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1번만 찍어 온 보수 유권자 중에는 “박근혜가 돼도 걱정”이라면서도 안보관이 불안한 문재인보다 낫다며 투표장에 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물론 박 후보는 “100%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문 후보는 “(후보 단일화로 물러난) 안철수의 새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점쟁이가 잘되는 것은 못 맞혀도 잘못되는 것은 귀신같이 맞히는 것처럼 정치적 공격수는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귀신같이 안다. 박근혜는 사라졌지만 문 후보는 ‘스스로 폐족이라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 그대로다.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박근혜 측의 예언대로 노무현 시즌 2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다짐과는 거꾸로 간 끝에 탄핵까지 당한 데는 유신공주처럼 타고난 기질 탓이 크다고 나는 본다. 기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어서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환경 변화나 죽을 만큼의 역경, 연기 또는 연출을 통해 성격이 달라질 순 있지만 단련(鍛鍊)되지 않은 인격은 도로 기질에 점령당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많은 미국에선 정책이나 인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도 대통령의 용기와 정직성 같은 기질과 성격은 바꿀 수 없다며 ‘성격이 최고다(Character Above All)’ 같은 연구 결과가 쏟아진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후보들의 기질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선 사흘 전, 위기 때 누가 더 좋은 판단력을 보이겠느냐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꼽은 유권자가 훨씬 많았으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역시나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옆에 두고 시리아 폭격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예측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어도 기질을 알면 어떤 대통령이 될지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치열한 검증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질로 정직성, 도덕성, 타협 능력 등이 꼽히는데 이는 과거의 행적을 들춰내는 네거티브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자기주도성이 부족하고 세상을 못 믿었던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최태민의 ‘최’자만 나와도 “천벌 받을 일”이라며 부르르 떠는 바람에 검증이 불가능했지만 이번에도 대충 넘겨서는 비슷한 과거가 반복될 수 있다.

문재인은 어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 경험, 정책, 세력이 다 준비된 후보”라고 했다. 적폐청산을 내건 그 국정 경험, 정책, 세력은 노무현 정권 거의 그대로다. 노무현 서거 뒤에도 정치를 원치 않았던 정치 혐오 기질인 그가 대선에 두 번이나 도전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도구로서 그들의 못다 한 꿈을 이뤄야 한다는 책무감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5년 전 친노 패권 세력의 조직적 낙마 작전에 밀려 문재인의 ‘불쏘시개’ 노릇을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이제는 그의 상대다. 당시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을 기막히게 지적했던 문재인 측처럼 이번에 안철수 측에서 지적하는 “남자 박근혜” “과거에 발이 묶인 패권세력”이라는 말도 다 겪어 보고 하는 얘기일 터다.

안철수에 대해 문재인은 “국정 경험도 없고 40석 소수 정당의 후보로는 국정 운영이 불안하다고 국민들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에게도 ‘사회적 불편감’이 있어 양보라는 명목으로 번번이 철수(撤收)했지만 명예욕과 자신이 정한 행동 방침을 고수하는 강박적 기질 때문에 낙선하면 또 나올 것이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최명기는 진단했다.

4차 산업혁명을 향한 대비를 내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미래를 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적어도 1970년대 유신이나 1980년대 운동권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대선은 익숙한 과거 대(對) 불확실한 미래의 선택이 될 것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안철수#문재인#노무현#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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