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고립주의 현실화땐 中-日패권 갈등… 韓 ‘액션플랜’ 준비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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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트럼프 시대]<5·끝>출렁이는 아시아 안보정세

 “남중국해는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곳은 미국에서) 너무 멀고 분위기가 너무 적대적이며 무엇보다 중국이 이미 (인공 섬) 건설을 해 버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공화당 내 경선에 출마하기 전인 지난해 3월 경선 후보 자격으로 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 첨예한 이슈였던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행정부가 항행의 자유를 외치며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미국이 이 문제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빠져나오면 일본이나 다른 국가가 이것에 대해 다루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를 예로 들면서 미국이 해외 분쟁 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한다고 주장했다. 질문자가 “미국이 물러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주변국을 위협하면 어찌할 것이냐”라고 묻자 “그들이 스스로 지킬 것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겨 왔다. 왜 미국이 방어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트럼프의 당시 이 발언은 재차 주목받고 있다. 국제 질서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음 날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 선거에서 승자는 중국’이라는 기획기사에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해 온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것은 중국의 ‘지정학적인 승리’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 직후 일약 ‘핵심(核心)’ 칭호를 얻으며 1인 지배 체제를 강화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트럼프 당선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과 미국 관계에서 협력만이 유일하게 옳은 선택이란 점은 여러 사실들이 증명해 준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미국이 발을 뺀 아시아 공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기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 오바마 정권의 유산이기도 한 미일 동맹의 중요성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필요성을 설득할 방침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 기회에 자주국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미국을 제외한 TPP를 일본 주도로 실현하자”라는 ‘자력갱생론’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8월 미국이 2025년까지 중국과 전쟁을 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면서 그 촉발 요인으로 △센카쿠 열도에서의 중일 충돌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타국 위압 △북한이 급변 사태를 맞았을 때 △중국의 대만 공격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해공(海空) 충돌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트럼프는 지난해 3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현재의 미일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유사시 미국만 일본을 돕도록 돼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일 간 우발적인 충돌이 미국의 전면 개입을 부르는 상황이 될 때 트럼프가 정말 일본을 방위하기 위해 피를 흘릴지 의심이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 이후 공약에 대해 선별적으로 말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아직까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는 대선 전에 중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력은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나타난 초기 인식이 정책으로 현실화돼 대중국 방위의 임무를 일본에 맡기고 후퇴할 조짐을 보인다면 그 힘의 공백을 틈타 중국과 일본이 지역 패권을 놓고 갈등을 일으킬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미국 대선을 전후해 중국과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단행했다. 13일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중국 동해함대는 최근 육군 및 공군과 함께 동중국해에서 입체적인 연합 상륙작전 훈련을 벌였다. 훈련에는 2만 t급 상륙함 이멍산(沂蒙山)함도 처음으로 참가해 육해공 3군의 지휘부 역할을 했다. 미사일까지 동원한 훈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으며 중국군은 1박 2일의 공방 끝에 상륙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방어 훈련에 나섰다. 일본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경찰은 11일 가고시마(鹿兒島) 현 아마미(奄美) 군도에 있는 무인도 에니야바나레(江仁屋離) 섬에서 무장 어민 상륙 저지 작전을 비공개로 펼쳤다. 무기를 소지한 어민들이 섬을 불법 점거한 상황을 가정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헬기와 해양순시선 등을 투입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방조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트럼프가 아시아에서 섣불리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TPP에 이어 한미일 군사동맹에도 비즈니스 시각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역학구도가 어떻게 급변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미국의 파워 공백을 틈타 중국과 일본이 힘의 경쟁에 나설 경우 군사 강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은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액션플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고립주의#중일관계#액션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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