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사관, 과태료 못낼 정도로 가난하지만 벤츠 몰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1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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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와 가끔 만난 한 교민은 21일 “북한대사관에 쌀을 가져다주곤 했다”며 “태 공사는 쌀을 주면 소주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도움을 받더라도 ‘지원’이라는 말에 상당히 자존심 상해 했다”고 전했다.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 때도 한국 교민들은 북한 선수의 숙소와 식사 일체를 제공했다. 태 공사가 런던 외곽의 카부츠(중고품 매매시장)에도 자주 들렀다고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은 전했다. 김 총장은 “워낙 생활이 궁핍해 대사관 직원들은 이곳에서 주로 낡은 생활용품과 전자제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북한대사관에서 40분 거리인 한인 밀집지역 뉴몰든의 한인마트에도 자주 들렀다. 뉴몰든에는 탈북민 700여 명이 살고 있다. 한 탈북자는 “한인마트 계산원 대부분이 탈북자”라며 “탈북자를 감시했던 태 공사가 탈북민들 앞에서 계산하는 모습이 상당히 아이러니했는데 이제 나와 같은 탈북자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은 “노무현 정권 때 태 공사가 직접 전화로 ‘파이낸셜타임스 1년 구독권과 노트북을 달라’고 요청해 북한대사관에 보내준 적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20일 영국 외교부 문건을 인용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현지 정부에 불법주차 과태료 20만 파운드(약 2억9320만 원)를 체납했다”고 보도했다. 과태료를 못 낼 정도로 가난했지만 차는 검은색 대형 벤츠 S350이었다. 한 교민은 “대사관 차가 2, 3대 정도 있는데 모두 벤츠급이다. 외교관 체면도 있고 김정은이 벤츠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태 공사와 가족은 영국과 미국의 협조 아래 영국 공군기로 독일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고 영국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21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태 공사는 두 달 전 런던 북서부 왓퍼드의 한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처음 만났다. 그는 망명지를 택할 수 있는 백지수표가 주어졌는데 한국을 선택했다. 부인 오혜선 씨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대형마트인 ‘마크스 앤드 스펜서’에 들러 달라는 요구도 했다. 영국에서 독일까지 비행하는 동안 태 공사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에 사인했다. 둘째 아들인 금혁은 친구에게 갑자기 사라지게 된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이는 이번 탈북이 한국 주도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20일 보도와 다르다. 통신은 북한이 범죄 사실 조사를 위해 영국 정부에 태 공사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음에도 “남조선 괴뢰(한국 정부)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다”고 말해 탈북 직전 태 공사의 신병이 영국 정부에 있었음을 시인했다. 또 태 공사가 탈북 결행 당시 여권이 없었다고 밝혀 대사관 ‘넘버 2’인 고위 외교관도 북한 식당 종업원처럼 자기 여권을 직접 소지하지 못하고 보위부 요원에게 맡겨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뉴몰든=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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