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有錢減刑… 양형기준도 소용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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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법원 양형기준 준수율 분석
뇌물-증권-선거 등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기준 미준수율 21~22% 달해
폭행-교통 등 일반 범죄의 4배 이상… 판사, 감경사유 남발해 고무줄 판결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76)은 중앙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9월 중앙대 총장 출신인 박범훈 당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68)에게 공연 협찬금을 주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총 32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건넸다. 박 전 수석이 중앙대에 특혜를 베풀어준 대가였다.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 등으로 기소된 박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양형기준상 권고 최저형인 징역 1년보다 낮은 것.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범행을 반성하고 있으며, 동종 전과가 없고, 공연 협찬금 3000만 원에는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는 뜻도 포함됐다는 점 등을 감경 사유로 들었다. 4월 항소심 선고에서도 박 전 회장의 형량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이 양형기준 제도를 시행한 지 7년이 넘었지만 고위 공직자, 기업인과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양형기준 제도 시행 이후 연도별 준수율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기준 미준수율은 뇌물 범죄 22.1%, 증권·금융 범죄 21.8%, 선거 범죄 22.0% 등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범죄의 양형기준 미준수율 평균(10.3%)의 두 배 이상에 이르는 수치다. 특히 폭행 범죄(3.7%), 교통 범죄(4.9%) 등 일반 범죄와 비교하면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기준 미준수율은 확연히 높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논란이 줄지 않고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판사는 피고인의 형량을 정할 때 양형기준을 참고해야 한다. 구속력이 없는 권고기준이지만 이를 벗어나 판결할 때에는 판결문에 그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

대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2009년 7월 양형기준 제도를 도입했다. 살인, 뇌물, 성범죄, 강도, 횡령·배임, 위증, 무고 범죄 등 7개 유형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해 현재 32개 유형의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양형기준 제도 시행 후에도 돈과 권력이 있는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고무줄 양형’ 의혹은 계속돼 왔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고위 공무원 등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관련된 범죄일수록 양형기준을 더 엄격하게 준수해야 법 집행이 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수긍할 수 없는 사유로 양형기준을 무시하면 국민의 신뢰를 높이려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오혁 hyuk@donga.com·허동준 기자
#양형기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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