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 2017년 또 다시 위기설...문재인 책임 못 면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6일 2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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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직전 같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고음
총선-대선 이어진 정권말기에 눈앞의 위기 막을 수 있을까
DJ-민노총 노동개혁 반대했듯
이번에도 같은 과오 반복하면 문재인·야당, 역사의 죄인 될 것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그때는 다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라고 말했다. 외환위기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우리는 펀더멘털도 좋고 평소 멘털도 나쁠 것 없었는데 갑자기 IMF가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벌써 18년 전이다. 그때 뉴스를 뒤져보니 먼저 비상벨을 울린 쪽은 역시 민간연구소와 기업이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1997년 1월 “한국경제가 1994년 외환위기를 맞은 멕시코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10월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에선 “동남아 외환위기가 아태지역 경제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한가한 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IMF에 쫓아가기 일주일 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위기 극복을 위해 3년간 임금동결을 제안하며 근로자에게 무(無)분규운동을, 정치권에는 정쟁 자제를 촉구했지만 노정(勞政)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온다. 설마 외환보유액이 모자라 같은 위기가 또 닥칠 것이라곤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지난 주말 삼성그룹이 7년 만에 최저 폭의 임원 승진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머리끝이 쭈뼛 선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1년 전에도 삼성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대대적 인력감축과 선제적 구조조정에 들어갔었다.

지난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교과서에 올림 직한 신종 위기의 신흥국가로 중국, 싱가포르, 태국과 함께 한국을 꼽았다. 경상수지 적자로 위기에 몰리는 보통의 외환위기와 달리, 외환보유액도 상당하고 경상수지도 흑자에 국가재정도 괜찮은데 민간 부채와 과잉생산 때문에 디플레가 마냥 이어지는 새로운 위기라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채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40% 정도라며 선진국보다 훨씬 양호하다지만 기업부채와 가계부채가 무려 200%, 중국 뺨치는 수준이다. 특히 가계부채는 기업부채보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암 덩어리여서 ‘깡통주택’이 속출할 경우 빚이 없는 사람들도 앉아서 재산이 줄어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중국의 성장이 주춤하고 미국이 조만간 금리를 올리면 좀비기업 득실거리는 한국 같은 나라는 직격탄을 맞을 우려가 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외환위기 닥치는 줄 몰랐던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상당수가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부 계획표도 이미 나와 있다. 좀비기업 정리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선진국 같은 구조개혁이 필수다.

그런데도 지금이 되레 두려운 이유가 있다. 그때는 IMF 구제금융과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합심해 개혁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이 총선이고 후년이면 대선이 기다리는 정권 말기다. 새누리당의 김종석 여의도연구소장조차 “이런 정치 일정에 평창올림픽까지 앞두고 해외발(發) 위기가 닥치거나 대기업 부실이 드러날 경우 과연 정부나 정치권이 힘든 결정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폭탄이 터질까 다음 정권까지 묻어만 둔다면 더 큰 재앙이 될 게 뻔하다.

18년 전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괴물도 없었다. 그래도 민주노총이 총파업으로 맞서는 바람에 여당이 단독 처리한 노동법 개정을 없었던 일로 돌려야 했다. 결국 IMF의 요구로 원위치시켰지만 지금 같으면 야당이 허락해주지 않는 한 어떤 법도 통과가 불가능하다. 차라리 IMF의 강제력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겁나는 점은 현재 야당에 김대중(DJ) 대통령만 한 인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만에 하나 ‘박근혜 경제’가 계속 내리막길이고 개혁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권은 교체될 수밖에 없다. 18년 전 DJ는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걸 아는 진보적 정치인이어서 세계화 시대에 맞는 개혁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패권주의를 고수하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1980년대 운동권의 세계관 그대로인 우물 안 개구리다. 일본이 미국, 영국처럼 근로자 파견을 전면 허용한 덕분에 일자리를 2003년 61만 개에서 2013년 137만 개로 늘렸다는 걸 안다면 노동개혁법안을 반대할 리가 없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노총과 연대해 노동개혁 금융개혁을 결사반대했던 DJ가 “IMF 사태에 야당도 책임 있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또 다른 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두겠다. 박근혜 정부의 구조개혁 법안을 막아 행여 위기가 닥친다면, 문재인과 야당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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