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北“서울 불바다” 협박땐 사재기 ‘광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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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北도발, 동요없는 국민들
달라진 국민들 대응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과 핵 개발 위협으로 남북 간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시 우리 국민 사이에서는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는 등 불안감도 컸다.

북한 핵 개발 의혹이 증폭되던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는 남측 송영대 대표(당시 통일원 차관)에게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협박했다.

같은 해 6월 13일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공식 탈퇴한다고 선언하면서 우리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당시 언론들은 사재기 현상에 대해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그랜드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특히 강남지역 백화점에서 다른 때보다 4배 많은 3만여 명의 주부들이 지하 식품매장에 몰려 계산대 앞에서 2시간씩 기다렸다”고 보도했다. 이들 백화점의 쌀 재고는 당일 소진됐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뒤, TV에 속보가 떴을 때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일부 시민은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대북유화정책인 이른바 ‘햇볕정책’을 펴면서 남북 간의 긴장 상황에 대한 국민 인식도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남북이 교류도 하고 가깝게 지내는데 설마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제1연평해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금강산관광 예약자 중 97%가 예약을 그대로 유지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벌어진 제2연평해전 때에는 참수리 357호 승무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인명 피해를 입었지만, 당시 한일 월드컵 때문에 국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서울불바다#협박#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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