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中日 싱크탱크 美여론전… 한국은 어디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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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특파원
이승헌 특파원
#1.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직후인 이달 초 중국은 워싱턴 인근 알링턴에 중-미관계연구소(ICAS)를 세웠다. 미국 내에 설립된 첫 중국 전문 연구기관인 이 연구소는 겉으로는 ‘하이난 난하이 연구재단’이 설립한 비영리 학술기관이지만 중국 정부 산하기구인 ‘남중국해 국가연구소’가 세웠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이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싱크탱크를 설립할 것을 지시한 이후 만들어진 첫 기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2. 아베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연방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한 지난달 29일 워싱턴에서 가장 비싼 호텔 중 하나인 포시즌 호텔에선 사사카와 평화재단 주최로 미일 동맹 강화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정 전체가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생중계된 이날 심포지엄에서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의 당위성과 특히 일본 정부의 ‘보통 국가화(전쟁 가능 국가화)’의 필요성을 일본어로 설명했다. 재단 이사장은 미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장(DNI)을 지낸 데니스 블레어가 맡고 있어 미국의 전현직 외교 안보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호텔 로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 외교가 미국 일본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내 여론을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국익을 위해 각종 싱크탱크를 앞세운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지만 한국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워싱턴엔 2009년 5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한국 관련 연구 전담자인 한국석좌(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자리가 처음 개설된 데 이어 지난해 6월 SK그룹이 200만 달러,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00만 달러를 출연해 브루킹스연구소에 한국석좌(캐서린 문 웰즐리대 교수)를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두 싱크탱크에서 한국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미나가 열린 경우는 사실상 없다. 올해 2월 CSIS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세미나 정도가 고작이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래리 닉시 CSIS 연구원은 최근 기자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6월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전 한국의 주요 싱크탱크가 먼저 워싱턴에 와서 한국 관련 어젠다를 던지고 이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외교란 복잡하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두뇌 싸움이다. ‘실용 외교’의 전제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유연한 상상력에 상대국의 마음을 사는 여론전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이승헌·워싱턴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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