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强대强정국 속 與野에서 사라진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표박… 친박의 실종

친박(친박근혜) 일색이지만 정작 친박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조직법 개정 논란으로 박근혜 정부가 표류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정권 창출의 전면에 섰던 친박계 의원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대선 직후만 해도 ‘대박’(대통령을 만든 친박)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서로 친박이라고 자랑했지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친박 그룹의 정치적 지원 사격이 시원치 않다는 것이다. 숨죽이고 있는 친박을 겨냥해 ‘표박’(豹朴·상황이 바뀌니 표변하는 친박)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는 형국이다.

4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이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100여 명 중 발언대에 선 사람은 옛 친이계인 재선의 조해진 의원이 유일했다. 조 의원은 “통치가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고 일부 참석자는 박수를 쳤다. 그러나 친박 의원들은 물끄러미 조 의원의 발언을 들었을 뿐 반론을 펴거나 박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한 사람은 없었다. 조 의원은 7일에도 라디오에 나와 민주통합당이 전날 정부조직법 처리를 위해 제안한 언론청문회 등 3대 조건에 대해 “앞뒤가 안 맞는다”고 공격했다.

친박 의원들이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 취임 후 정부조직법 개정 논란과 관련해 별도의 공개 대책 모임을 가졌다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 일부 친박 의원은 최근 시도별 모임에는 참석해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선 후 소원했던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회포를 풀었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지역을 잘 다지는 것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친박 의원들이 정부조직법 논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야 비판 성명 등으로 여론전에 가세한 경우도 극히 드물다. 대통령직인수위원이었던 강석훈 의원이 지난달 28일 인수위안을 재차 설명하려고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과 박대출 의원 등 초선 의원들이 지난달 25일 “창조경제의 근간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야당에 발목을 잡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낸 게 고작이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강 의원은 회견 후 “안타까운 마음에 (내용을) 정리하려고 나갔다”며 줄담배를 피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도 당내 친박들에 대해서는 감정이 썩 좋지 않다. 한 핵심 관계자는 “정권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이 정권 성공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같은 친박들의 행보는 대선 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쌓인 박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몸을 던졌지만 정작 자문교수 그룹과 일부 핵심 측근을 제외하곤 인수위와 청와대 인선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제 몫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때 여의도에서 ‘홀박’(홀대받는 친박)이란 표현이 나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도권의 한 친박 의원은 “솔직히 청와대가 대선 후 우리로 하여금 ‘여당 의원이구나’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민주당, 리더십 실종 ▼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조건으로 3가지를 제안한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처신을 놓고 당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정부조직 개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을 ‘협상안’으로 포장해 제시했다가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비판이 많다. 바깥에선 우군(友軍)으로 여겨온 MBC노조마저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제시한 3가지 안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시 방송통신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특별정족수안 도입 △언론청문회 즉시 실시 △MBC 김재철 사장에 대한 검찰 조사 및 사퇴 등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며 ‘공공성과 공정성’을 내세워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규제 및 법률 제정·개정권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절대 넘겨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랬던 민주당이 하루아침에 “방송사 인사권과 바꿀 수 있다”고 돌아선 것이다. 이로써 애초부터 SO는 구실이었을 뿐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 도리가 없게 돼버렸다.

이상민 의원은 7일 라디오에서 지도부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원안 처리의 조건으로 3가지를 제시한 데 대해 “방법이나 시기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매우 작위적인 느낌”이라며 “전략적 미스,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의원은 “갈팡질팡 오락가락”이라며 “축구경기 룰을 얘기하다 뜬금없이 야구경기 룰을 불쑥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지도부의 전략에 대해 “롤러코스터를 보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한 초선 의원은 “대체 왜 그간 SO의 미래부 이관을 반대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며 “이유 없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왔음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5일)에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야당인 민주당에 책임이 있다”(31.2%)는 답변이 “여당에 책임이 있다”(21.8%)는 응답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MBC노조는 성명을 내고 “MBC 문제는 정치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지도부를 공박했다. “민주당의 ‘경거망동’으로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MBC 문제가 희화화의 대상이 돼버렸다”고도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성명을 통해 “민주당의 3대 조건은 정부조직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맞교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안팎의 비난이 가열되자 박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우리가 조건으로 내건) 3가지 최소한의 조치는 공정방송의 시금석”이라면서 “야당이 양보해서 길을 열어줘도 싫다는 여당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는가. 여전히 방송장악 의도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고 비켜갔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민주당 지도부에 대해 “리더십의 실종, 공백 사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지나치게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전략적 우를 범하고 있다”며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져줄 것은 져줘야 돌파구가 열린다”고 조언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정부조직법#친박#민주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