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위치추적’ 법안 무산도 검경갈등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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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허용 법개정안 내자법무부-검사 출신 의원들 “檢이 통제를” 제동 3년째 표류

경찰이 112 신고자에 대한 자동 위치추적을 할 수 없었던 데에는 고질적인 검경 갈등이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경찰이 위치추적 법제화 작업을 추진했지만 법무부와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근거로 제동을 건 것이다.

결국 1일 조선족 남성에게 납치돼 참혹하게 살해된 20대 여성은 검경 수사권 갈등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 ‘女회사원 피살’ 계기로 법제화 착수


경찰은 2007년 8월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여성 회사원 2명이 납치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 접수와 동시에 위치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112 접수원과 통화가 시작된 직후 범인들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경찰은 신고자 동의를 구하지 못해 위치 조회를 하지 않았고 피해 여성들은 며칠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듬해 최인기 변재일 의원 등을 통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위치정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이 사건 후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하겠다며 같은 내용의 법안을 냈다. 개정안 초안은 ‘긴급구조 요청 시 경찰도 요청자의 위치정보를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법무부는 “경찰의 위치추적 오남용을 막기 위해 검찰과 법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경찰은 “112 신고의 대부분은 수사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신고자 위치 조회는 행정업무에 속하고, 보고 절차가 많으면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맞섰다. 결국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거치며 경찰에 위치추적권을 주되 법원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정리됐다.

○ 檢 출신 의원들 “검사 통제 받아라”


하지만 위치정보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신고자에 대한 위치확인도 수사행위이기 때문에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해당 논의가 이뤄진 2010년 4월 29일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이한성 박민식 최병국 의원이 반대의 선봉에 섰다. 이 의원과 박 의원은 “112 위치추적도 통상적 수사절차에 따라 경찰이 검찰에 신청하고 검찰이 법원의 허가를 얻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도 “경찰이 위치추적 후 법원에 사후보고 한다는데 경찰은 법원과 ‘직거래’를 할 수 없고 검사를 경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 지휘체계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형식 논리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수사 지휘의 범위를 두고 지속돼온 검경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여기에 야당은 인권침해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민주당 간사였던 박영선 의원은 “경찰이 위치추적권을 갖게 되면 지휘권자인 검찰에 개인정보가 넘어가고 그러면 인권침해 소지가 커진다”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결국 개정안 논의는 무기한 보류돼 2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 이 개정안은 18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 긴급 신고 땐 편법 위치추적하기도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서 일부 112센터는 신고자 동의 없이 위치추적을 한 뒤 검찰에 사후 보고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실제로 7일 서울지방경찰청 112센터에는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신고를 해왔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경찰은 납치 감금으로 판단하고 동의 절차 없이 신고자 휴대전화로 위치조회를 했다. 신고자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모텔에 있는 것으로 확인돼 신고 3시간 만에 피해 여성을 구출했다. 경찰은 도주하던 용의자도 검거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은 “신고한 사람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합법 불법 따지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수원여성피살사건#경찰#검찰#검경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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