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병사가 얼마나 추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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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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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성탄트리 협박’ 서부전선 애기봉 가보니추위에 모포 뒤집어쓴 北병사들… 포대경 설치해놓고 南 동향 감시

13일 오전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의 한 북한군 감시초소. 북한 병사 2명이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한 듯 모포를 뒤집어쓴 채 경비를 서고 있다. 김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3일 오전 경기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의 한 북한군 감시초소. 북한 병사 2명이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한 듯 모포를 뒤집어쓴 채 경비를 서고 있다. 김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3일 오전 서부전선 최전방인 경기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애기봉 전망대.

해발 155m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의 북한지역은 손을 에는 칼바람 속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강 건너 불과 1.8km 떨어진 북녘 땅이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다가왔다. 애기봉 성탄트리 등탑을 점등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는 최근 북한의 위협을 체감할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성능 카메라와 망원경으로 살펴본 북측 산악고지 곳곳에는 10여 개의 북한군 감시초소와 막사 주위의 북한군 움직임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슬레이트 건물인 북한군 초소와 막사들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심하게 낡아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주변 지형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북한군은 소총을 메고 줄 지어 초소와 막사 주변을 이동하거나 경계 철조망을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점검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일부 북한군 병사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 듯 거적이나 모포를 뒤집어쓴 채 초소 앞에 꼼짝 않고 쭈그려 앉아 햇볕을 쬐기도 했다.

한 북한군 막사 앞에는 공격 목표와 탄착 지점을 확인하는 데 사용하는 포대경이 설치돼 있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도 오래전부터 대북 심리전 애기봉 전망대의 성탄트리 설치 작업과 우리 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북한 선전마을(해물마을)에선 김일성 주체사상탑을 중심으로 일반 가옥과 정미소, 공회당을 오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주체사상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신다’라고 붉게 쓴 글씨가 선명했다. 마을 내 탁아소와 공터엔 삼삼오오 모여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군 당국은 23일로 예정된 애기봉 성탄트리 등탑 점등식을 겨냥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열영상감시장비(TOD)와 적외선 관측장비 등으로 대북 감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24시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점등식 때까지 전망대 인근의 주둔지역에 병력과 타격 전력도 증강 배치할 계획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점등식을 전후해 우리 군의 감시가 힘든 산악 뒤편에서 직사화기나 곡사화기로 관측소 등을 향해 기습도발을 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할 경우 군은 작전계획에 따라 인근 지역에 배치한 다연장로켓포 등 가용한 화력을 총동원해 도발원점을 타격할 방침이다.

한편 애기봉 전망대와 그 주변에선 성탄트리 등탑 설치와 방호시설 보강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장병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탄복을 착용하고 전망대의 관람석을 비롯한 곳곳에 방호벽을 구축하는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전망대 바로 옆 높이 30m의 철탑에선 민간 공사 관계자들이 방탄복을 입고 크레인 차량을 이용해 1만 개의 성탄트리용 오색전구를 매달 케이블의 설치 작업에 열중했다.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이렇게 든든한 군 장병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전혀 두렵지 않다”며 “다른 작업을 할 때와 별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기봉 성탄트리 등탑은 일주일 안에 설치작업을 끝낸 뒤 시험점등을 거쳐 23일 점등식을 갖고 내년 1월 6일까지 보름간 불을 밝힌다. 애기봉 등탑의 불빛은 25km 떨어진 북한 개성 시내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

1971년 세워진 애기봉 성탄트리 등탑은 2004년 6월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을 제거하기로 한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이후 철거됐다. 당시 북측은 “애기봉 철탑의 불빛이 우리 쪽을 가장 자극한다”며 철거를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애기봉 등탑은 다시 불을 밝혔다. 지난해에도 북한은 심리전 수단에 대한 조준 격파사격 위협을 했다. 국방부는 기독교단체의 요청에 따라 올해엔 애기봉 외에도 평화전망대(강원 철원군), 통일전망대(강원 고성군)에 추가로 성탄 등탑을 세우기로 했다.

김포=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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