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지원 약속 15개월…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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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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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책 현장선 실감 못해… 신규 중견기업만 세제지원
中企 남으려고 기업분할도… “R&D투자 中企만큼 혜택을”

정부가 지난해 3월 중견기업 육성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는 중견기업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15개월 동안의 육성대책 효과를 점검한 결과 정부가 내놓은 9개 방안 중 8개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견기업계의 불만이 커지자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열린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중견기업 지원책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중소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춘 현행 기업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실효성 있는 중견기업 지원책 마련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 정책과 현장의 엇박자


정부는 올해 3월 중견기업 범위를 ‘중소기업이 아니고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으로 정했다. 2007년 기준으로 1213개사가 중견기업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중견기업에 조세 및 금융부담을 줄여줬고 전문인력 지원도 확대했다.

하지만 중견기업계는 중견기업 정의와 지원근거를 마련한 점에 대해서만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 나머지 정책들은 “실망스럽다”고 평가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은 “정부 정책은 갓 중견기업이 된 기업에 한한 지원책이며, 기존 중견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연구개발(R&D) 세액공제가 좋은 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당초 3년간 중소기업에 주는 R&D 세액공제(25%)를 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대책에서 이 기간을 5년으로 늘려줘 중견기업이 되더라도 8년간 세액공제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중견기업계는 “이미 중견기업이 된 지 오래된 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반응이다.

중견기업계는 “중소기업 적합품목 적용을 받는 기업에 중견기업이 속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샘표식품의 정규직은 424명, 자산은 1903억 원이다. 산업발전법상 중견기업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매출액 1957억 원 가운데 약 60%를 간장사업에서 올렸다. 하지만 최근 ‘중소기업 적합품목’에 장(醬)류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박진선 사장은 “장류가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결정되면 우리는 간장사업을 접어야 한다. 모든 중소기업은 열심히 일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려 하는데 이런 상황이면 누가 회사를 키우려 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 중견기업용 맞춤형 정책 필요


사무용 가구업체인 퍼시스는 지난해 12월 교육용 가구 브랜드였던 ‘팀스’를 별도 법인으로 쪼갰다. 팀스를 분할하지 않으면 퍼시스는 2012년부터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공공조달 시장에 납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종태 퍼시스 사장은 “국내 매출액의 절반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나오는데 내수시장의 반을 포기하면 회사를 운영할 수 없다. 8개 공장의 문을 닫아야 하고 협력회사 직원까지 포함해 2500여 명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기업분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계에서 기업분할은 공공연한 일이다.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약 160가지에 이르는 정부 지원이 한꺼번에 끊기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견기업에 맞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표정호 한국중견기업학회 회장(순천향대 경영학부 교수)은 “비행기로 치면 중소기업은 활주로 위를 달리는 것이고 중견기업은 이륙하는 단계”라며 “에너지가 가장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상 회장은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만큼은 계속 중소기업 수준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중견기업 경영진들은 △고급 인재에 대한 병역특례 인정 △정부출연연구소 인력파견 확대 △가업승계 상속세에 대한 고용증대 요건 철회 등을 실효성 있는 지원책으로 꼽았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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