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 ‘상하이 스캔들’]김정기 상하이 총영사 재직 당시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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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자에 中여행증명서… 변조 서류 내도 한국행 비자…

한때 단순 치정사건으로 여겨진 ‘상하이 스캔들’이 국가기밀 유출사건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가 합동조사단까지 꾸려 이 사건에 대한 상하이 현지조사까지 포함한 강도 높은 전면 재조사에 나선 것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이 9일 김정기 전 상하이총영사를 다시 불러 8시간가량 집중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총리실은 김 전 총영사가 갖고 있던 자료들이 어떻게 문제의 중국 여성 덩신밍 씨에게 유출됐는지가 사건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총리실은 그가 덩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있는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를 덩 씨에게 직접 건넨 사실이 있는지를 집중 조사했다.

하지만 김 전 총영사가 대부분의 의혹을 부인하면서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다만 정보기관의 음해라는 기존 주장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한 것은 실수”라며 철회했다.

김 전 총영사는 또 전날 언론과 인터뷰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리 이날은 취재진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등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에는 기자들을 피해 조사실이 있는 총리실 창성동 별관 후문으로 몰래 들어갔고, 밤늦게 귀가하면서도 “할 말이 없다”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처럼 김 전 총영사에 조사가 집중되면서 공관장 자질이 의심되는 그의 행적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는 최근 임기가 만료돼 귀국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이번 사건 때문에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정부 안팎에서는 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김 전 총영사가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관장이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면서 정치권에 뛰어들었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서울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았다. 최근에는 4·27 경기 성남시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를 시도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는 정치권에서는 ‘거로(巨路) 선생’으로 통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미국 뉴욕주립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 30대에 자신의 호(거로)를 딴 ‘거로 영어연구’ 등 영어 학습교재로 1990년대 대학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감사원의 ‘2006∼2010년 재외공관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전 총영사가 재직하던 2009년 한 해 동안 주상하이 총영사관은 5건의 지적을 받았다. 감사 결과 상하이총영사관은 인질강도와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 수배를 받은 20명에게 2007∼2009년 여행증명서를 발급하고도 이 사실을 외교통상부, 법무부, 경찰청에 알리지 않았다. 2008년 8월에는 사증발급신청서를 변조해 제출한 중국인 6명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이 밖에도 소속 행정관이 47회에 걸쳐 관서운용경비 계좌에서 5억여 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이는 김 전 총영사가 공관장으로서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당국자는 “중국의 총영사관은 한국행 비자 발급 수요가 많기 때문에 돈과 향응의 유혹이 많고 기밀을 노리는 공작도 발생한다”며 “김 전 총영사처럼 장악력이 떨어지는 외부 인사가 가면 공관이 엉망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김 전 총영사는 외교부 1차관 선정 과정에서 ‘인사 운동’을 벌여 뒷말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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