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국민의 선택] 시각장애인 서주영 씨의 생애 첫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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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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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보조용구로… 소중한 한 표
이름없이 기호뿐… 힘겨운 한 표

투표전 안내전화 한 통 없었고
교육감-교육의원만 점자 이름
5분 걸릴 투표 15분만에
“좀 더 세심한 배려 있다면…”

시각장애인 서주영 씨(위 사진 오른쪽)가 2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부안초등학교 투표소에서 아버지 서태현 씨와 안내견을 따라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서씨가 점자로 제작된 투표 보조용구를 통해 각 후보의 기호를 확인하는 모습(아래사진). 안양=김재명 기자
시각장애인 서주영 씨(위 사진 오른쪽)가 2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부안초등학교 투표소에서 아버지 서태현 씨와 안내견을 따라 기표소로 들어가고 있다. 서씨가 점자로 제작된 투표 보조용구를 통해 각 후보의 기호를 확인하는 모습(아래사진). 안양=김재명 기자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1주일 전에야 알았어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서 뿌듯하긴 한데 혼자 왔다면 투표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2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부안초등학교 투표소에서 시각장애인 서주영 씨(20)는 골든레트리버종 안내견 ‘나비’를 데리고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서 씨의 곁에는 투표를 도와준 아버지 서태현 씨(56)와 어머니 김미자 씨(53)도 함께했다.

서 씨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고 있다. 4세 때부터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1세 때 급격히 시력이 나빠져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지금은 성균관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서 씨의 첫 투표는 쉽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아무도 몰랐어요. 투표용지가 전부 점자로 돼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졌을 정도였으니….” 서 씨는 애초에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투표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따로 안내 전화가 온 적도 없다. 후보자들이 보내온 점자 공보물은 내용도 많이 누락되고 점자가 잘못 표기되거나 뭉개진 부분도 많았다. 아예 점자 공보물을 제작하지 않은 후보도 많았다.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 김 씨가 부재자 선거기간이 끝난 뒤 동안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나마 서 씨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 모니터링단’ 활동을 하며 1주일 전 지방선거와 관련된 교육을 받아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로 제작된 투표 보조용구를 투표지에 덧씌워 기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안내견과 함께 줄을 서 투표 차례를 기다리던 서 씨는 보조용구를 받아들고 난감해했다. 보조용구에 교육감과 교육의원 후보만 기호와 이름이 점자로 표기돼 있고 나머지 6장은 모두 기호로만 점자 표기가 돼있었던 것. 경기지사의 경우 1번 기호만 있고 김문수라는 이름이 없었다. 결국 기표소 안에서 서 씨가 보조인으로 지정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남들은 5분도 안 걸리는 투표를 15분이 넘게 해야 했다.

서 씨는 “보조용구의 구멍이 뚫린 부분을 찾아 기표를 하면 되지만 혼자서 하다가는 무효표가 되기 십상”이라며 “게다가 기호만 표기된 후보들은 이름을 외워오지 않은 이상 옆에서 설명을 해줘야 하니 ‘비밀투표의 원칙’을 보장받지 못한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투표소에는 보조용구도 한 세트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서 씨는 “다음 선거에서 선관위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면 좀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투표소로 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양=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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