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외화 사용 새해부터 전면 금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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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숨겨놓은 간부-부유층 옥죄기

방침은 “단호”
‘장롱속 외화’로 경제재건 의도, “외국인도 못써” 화폐 통제의지

현실은 “글쎄”
기관-시장 ‘뿌리깊은 결탁’ 2002년 금지때도 유야무야

북한이 내년 1월 1일을 기해 개인과 기관 등의 외화 보유 및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내렸다고 대북 매체들이 소식통들을 인용해 28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북한 최고 부유층은 물론이고 체제를 지탱하는 광범위한 핵심 간부층이 직접적인 타깃이 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北 당국 “내년부터 외화 사용 금지”

대북 소식지인 열린북한통신은 이날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과 무역을 하는 사업가의 말을 인용해 “1월 1일부터는 북한 내에서 달러 유로 엔 위안 등 외화를 직접 사용할 수 없으며 모두 북한 돈으로 바꿔 사용하라는 방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는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의 인민보안성(한국의 경찰청)이 26일 ‘공화국 내에서 외화를 남발하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하여’라는 포고문을 발표하고 개인과 무역기관은 물론이고 외국인까지 북한 내에서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며 은행을 제외한 개인과 기관이 외화를 보유할 수도 없도록 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개인이 가진 외화는 국가가 몰수하고 기업은 24시간 내에 은행에 예치토록 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외화사용 금지조치는 예고된 것이다. 조선중앙은행 조성현 책임부원은 4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상점, 식당들에서 외화를 주고받는 일이 일절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외국인이나 해외동포들이 가는 상점, 식당에서도 외화를 화폐교환소에서 조선 돈으로 교환해 쓰게 되어 있다. 인차(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치는 주민과 기업들이 쥐고 있는 외화를 국가가 강제로 빼앗아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앞두고 부족한 외화 수집에 혈안인 상태로 지난달 방북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도 “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또 외화에 대한 주민의 선호 경향을 애초에 뿌리 뽑아 신용도가 바닥을 친 북한 화폐의 가치를 강제로라도 보존하겠다는 속셈이다.

○ 당국과 부유층의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지난달 30일 단행된 화폐개혁의 피해자가 주로 장마당을 중심으로 북한 돈을 축적한 중소상인들이었다면 외화 보유 및 사용 금지령에 따른 피해 계층은 북한의 최고 부유층과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간부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의 외화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1992년 제4차 화폐개혁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국이 가구당 교환한도를 300원으로 제한한 뒤 나머지 돈은 저금 형식으로 사실상 몰수하자 장마당을 좌지우지하는 부유층들은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는 북한 돈보다는 달러나 위안화로 주요 거래를 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군을 통해 직접 운영하는 ‘수령 경제’ 영역의 기관과 기업소는 물론이고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 운영해 온 내각 산하의 기업소 등도 달러 등 외환으로 거래를 했다. 뇌물이 주 수입원인 북한 간부들도 외화로 부정 축재해왔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당국의 생각대로 집행된다면 북한 핵심계층의 체제 반감이 급속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전문가, “외화 보유 및 사용 금지는 경제 견인차 세우는 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 조치가 노리고 있는 간부들이 이 조치의 집행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이미 국가기관과 시장 세력들이 결탁해 외화 거래를 통해 경제를 돌리고 있는 셈이어서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은 국가경제를 세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에도 달러 사용을 금지했으나 흐지부지됐다.

북한 당국이 외화를 북한 돈과 교환해 주더라도 실제 교환에 응하는 개인과 기관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서 정하는 교환환율이 터무니없을 소지가 많고 외화 축적 과정에 대한 검열을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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