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낼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로…” 장마당 아수라장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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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통들이 전하는 ‘北 사회 혼란’
상점들 문닫고 장거리 버스 운행 멈춰
하루벌이 상인들 식량 구하기 전쟁
대학 기숙사 외부와 차단한채 화폐교환
주민들 분통에 보위부 등 순찰 강화

《북한의 화폐개혁 사실을 지난달 30일 처음으로 보도한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와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이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 소식’ 등 북한 소식지들은 1일 이번 조치로 인한 북한 내부의 혼란상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데일리NK는 소식통을 인용해 “화폐교환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0일 오후 북한 장마당(시장)과 직장 업무가 일제히 중단되는 등 대혼란이 발생했다”며 “평안남도 평성에서는 서둘러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외지 장사꾼과 출장 나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역으로 몰려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좋은 벗들은 물건을 파는 상점과 목욕탕, 식당 등이 거의 다 문을 닫고 장거리 버스 운행도 중단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데일리NK는 “장마당이 지난달 30일자로 사실상 마비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상인들은 식량을 구하지 못해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식량을 구하는 모습도 발견되고 있다. 또 전화량 폭주로 전신전화국의 광케이블 자동교환기 작동이 중지되는 사태도 발생했다”고 내부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전했다. 또 “신권을 구경하기 위해 은행 앞에 사람들이 모였으나 ‘오늘은 화폐 교환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원의 말에 돌아섰다”고 덧붙였다.

소식지들은 또 당국이 가구당 10만 원만 새 돈으로 바꿔주기로 해 애써 번 돈이 휴지조각이 되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라디오방송인 자유북한방송도 “현재 장마당의 물건 거래가 모두 단절된 상황이며 상인이나 주민 모두 당국의 처사에 거센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고 거칠어진 현지 민심을 전했다. 한 소식통은 “지금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아무도 (공화국을 위해) 싸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역전이고 장마당이고 온통 아수라장이다”라고 전했다고 데일리NK는 보도했다.

평안북도 신의주의 한 주민은 “겨울을 준비하려고 두 달가량 고달프게 장사해 번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처럼 되고 보니 눈앞이 아득하고 손에 맥이 탁 풀린다”고 말했다고 좋은 벗들이 전했다. 함경남도 혜산에서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한 여성이 화폐개혁 방침을 전해 듣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다가 실신했으며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민들도 목격됐다고 데일리NK가 보도했다. 내부 소식통은 “다른 장사꾼들은 그나마 중국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쌀 장사꾼들은 모두 우리 돈으로 값을 계산하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좋은 벗들은 또 대학교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1인당 3만 원까지만 헌 돈을 교환할 수 있다며 흉흉한 학내 분위기를 전했다. 학교 당국은 기숙사 정문을 차단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은 뒤 화폐교환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학생들이 바깥으로 나가 3만 원이 넘는 돈을 바꿀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 단체는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소동을 막기 위해 인민보안원(경찰)과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들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데일리NK는 전했다. 당국은 간부들과 사법일꾼(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열고 진정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또 직장 출근을 독려하기 위해 출근자에 한해 1인당 500원까지 추가로 교환해주고 ‘10만 원 이상의 돈은 버리지 말고 보관금 명목으로 바치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좋은 벗들은 전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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