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언중유골’로 세종시를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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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수여사 고향서 펼친 ‘우회의 수사학’
“어머니, 전국 방방곡곡 모두 행복하길 바라셔” 발언
측근 “세종시 원안의 국토균형발전 취지 강조한 것”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사과하고 원안 수정이 불가피함을 밝힌 것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이날 충북 옥천군 문화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84주년 탄신제에 참석한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세종시 사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가 얘기한 게 이미 다 보도가 됐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27일 밤 ‘대통령과의 대화’가 방영된 직후 측근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할 말은 이미 다 했고,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세종시가 ‘원안+알파’가 돼야 한다며 충청도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세종시 논란이 불거진 이래 박 전 대표가 충청권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입’에 쏠리는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날 박 전 대표는 ‘세종’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육 여사를 회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발언 곳곳에는 현안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박 전 대표는 유족대표 인사말에서 육 여사가 수를 놓아 한국 지도를 표현한 자수(刺繡) 작품을 언급하며 “작품을 볼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기 바라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와 여러분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생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세종시 건설을 통해 국토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행사에서 친박계 의원들도 세종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 많았다.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축사에서 근검절약했던 육 여사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며 “말은 꼭 지키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좋은 교훈을 내려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선거 유세 당시 세종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가 뒤늦게 원안 수정을 들고 나온 상황을 빗댄 것으로 들렸다.

이 같은 친박계의 태도는 이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 수정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곧장 대립각을 세울 경우 친이(친이명박)-친박계 간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경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한 친박계 의원은 “친박 의원 대부분이 당내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해 세종시 문제를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아직 박 전 대표의 의견이 바뀔 만한 상황 변화가 없었다”며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 세부안을 내놓은 후에야 다시 태도를 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허 최고위원, 송광호 최고위원, 이성헌 서상기 이정현 유정복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4명과 친박연대 노철래 원내대표, 박성효 대전시장 등이 참석했다.

옥천=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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