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생 참고 견딘 당신,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이희호 여사 편지-손수 뜬 담요 ‘마지막 길’ 동행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20일 평생 동지였던 남편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자신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첫 장 오른편 여백에 썼다. 이날 오후 1시 반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관식을 하면서 관에 이 편지를 넣었다. 이 여사는 편지에서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늘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이날 입관식 도중 비서관이 이 편지를 대신 낭독하자 이 여사는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를 포함한 비서진들이 함께 DJ를 떠나보내는 차원에서 비서관이 대신해서 편지를 읽었다. 이 여사는 편지 외에도 남편의 차가워진 배를 덮기 위해 병상에서 뜨개질한 작은 담요, 자신이 쓰던 손수건과 남편이 즐겨 읽던 성서를 관 속에 함께 넣었다.

윤일선 서울 서교성당 주임 신부가 주재한 입관식에는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를 비롯한 유족들과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의원, 민주당 박지원 의원, 동교동 사저 비서관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유족들은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를 부르며 관에 성수를 뿌렸다. 이 여사는 DJ가 누운 관 바로 왼편 의자에 앉아 편안히 잠든 듯한 DJ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촛불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님을 모셨듯이 여사님을 모실 테니 여사님은 걱정하지 마시라.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DJ의 시신을 실은 운구행렬은 신촌 오거리, 서강대교를 거쳐 오후 4시 반경 공식 분향소가 마련된 국회 본청에 도착했다. 운구차량에는 DJ의 손자인 종대 씨가 영정을 들고 앞자리에 앉았다. 세 아들은 그 뒷자리에 각각 올랐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은 특수 제작된 유리 냉장관에 안치됐다.

한편 DJ 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DJ가 1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쓴 친필일기 중 30일 치 분량인 40쪽 정도를 소책자로 만들어 21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책자의 제목은 일기에 나오는 문구인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최 비서관은 “일기 원문에는 한자가 많이 섞여 있지만 소책자에는 한글로 풀어 실었다. 일기장을 열어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DJ가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토로한 내용이 일기에 담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DJ 측은 책자 3만 부를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 배포하기로 했다. 책자에는 고인의 인생 소회와 부인 이 여사에 대한 애틋한 사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심경,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외국 지도자들과의 인연이 상세히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을 위해 북한에 억류됐던 미 여기자들 석방 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은 6쪽 분량의 메모 등도 책자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