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석훈]다시 ‘미래 준비’의 출발선에 서야 한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2009년 6월, 한국 경제가 무척 혼돈스럽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에게는 일견 사치로 보일 만큼 지적(知的) 유희가 난무하고 있다. 생업조차 없어 보이는, 그래도 용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은 들판을 휘저으며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 남들이 부러워할 생업이 어엿이 있는 사람들도 혹여나 이 굿판을 놓칠까봐 생업을 내려놓고 허겁지겁 이 굿판에 뛰어들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적 허영심으로라도 포장되었던 광기(狂氣)의 굿판은 이제 그 허영심마저 귀찮고 버거운 듯 맨살의 당파성(黨派性)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가고 한국 경제의 젊은 날도 가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앞으로 수백 년 더 지속될 수도 있으나, 한국 경제의 건강수명은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약 10년 이내에 한국 인구는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한다. 약 10년 후면 근대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세대인 ‘1958년 개띠들’의 은퇴가 본격화한다. 그때부터 거의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6·25전쟁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는 다시 거대한 노인붐 세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부터 약 15년 뒤에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 된다. ‘노인의 나라 한국’이 바로 코앞이다.

인구고령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추락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부작용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대의 성장률인 잠재성장률은 참여정부 시절 3∼4% 정도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계산에 따르면 이 정도 성장률로는 매년 20만∼30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뿐이다. 매년 대학졸업자가 50만 명이 넘는 점을 감안할 때 고용문제가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黨派性굿판 제치고 할일 해야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나아진 게 별로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의 투자는 더욱 얼어붙었다. 기술개발과 혁신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귀중한 재원은 굴착기로 땅 파는 데 허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도,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비장함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생산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없으면서 출산율 저하와 투자 위축이 지속되면 수년 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거대한 ‘저성장의 늪’에 직면해 있다.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의 모습도 녹록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더라도 위기 이전에 지속되었던 수년간의 호황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과잉소비에 의존하던 글로벌 불균형을 대체할 ‘지속가능하면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이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달러화의 위상이 저하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다. 당분간 중국 경제의 성장열차는 쉬지 않고 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가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에 추월당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제발전 단계를 감안할 때 중국의 성장열차가 한 번쯤은 대규모 탈선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에는 미국 경제가 아니라 중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실감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제창하는 녹색성장의 달콤한 유혹은 매력적이지만 치밀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하면 세계적인 녹색성장 기조가 한국 경제를 옥죄는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특단의 대책 없이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불확실성 증대와 경제성장률 저하의 1차적 고통은 서민과 빈곤층이 온몸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가족해체가 빈번하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상당수의 여성, 노인, 단독가구가 생존의 한계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구태여 거대한 이론과 정교한 논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우리의 우울한 내일이다.

일자리 있어야 소득불평등 완화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원화 가치 하락 덕분에 이번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소득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공공부문의 효율성 제고 그리고 불필요한 기업규제의 완화 노력을 배가하여야 한다.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해 조세 및 복지제도의 정비·확충, 서민과 빈곤층의 일자리창출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09년 6월, 그들이 굿판에서 소외됨을 두려워할 때 이명박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역사의 평가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강석훈 객원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경제학

shkang@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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