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서거’후 다시 고개드는 개헌론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1인 권력집중 문제많다”여야 정치권 ‘군불때기’
“국론 분열만 초래 우려” 당장 추진은 어려울듯

개헌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치권에서 개헌 문제가 재조명받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현 대통령중심제의 1인 권력집중이 갖는 문제점을 어떤 형태로든 바꿔야 한다는 쪽에 모아져 있다. 지금처럼 5년 단임제가 계속되는 한 사생결단(死生決斷)식의 대통령선거가 이어지고 정권 교체 후 이뤄지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 보복’ 논란에 휘말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것이다.

율사 출신인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의포럼’에서 “한국 정치가 전쟁터같이 된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고 폐해를 없애는 방법은 분권형 대통령제밖에 없다”며 이원집정부제 필요성을 제기했다. 프랑스 이원집정부제는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총리가 책임진다. 앞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 강연에서 “처음과 레임덕 기간을 빼면 대통령이 일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4년 중임제 개헌 지지를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27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인 문희상 국회부의장도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선 죽기 살기식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이를 지키기 위해 또 싸워야 한다”며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총재는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 전국을 5∼7개 광역단위로 나누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하는 ‘강소국 연방제’를 제안했다.

정치권에서 개헌에 적극적인 사람은 김형오 국회의장이다. 그는 1일 국회 기관장회의에서 “다시는 이 땅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데 모두가 깊이 생각하고 논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취임 후 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이 위원회는 7월 최종 연구결과보고서를 발표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한국형 권력분점제 등 2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야 의원 186명으로 구성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도 지난해부터 매주 한 차례 개헌 세미나를 열고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개헌을 하려면 올 하반기까지는 이해 당사자 간에 의견이 근접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대권주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개헌 합의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권 내에서는 개헌 문제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편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여야 대결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개헌 논의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개헌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여권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개혁입법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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