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개혁 한길… 님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 한명숙 전 총리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 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됐습니다. ‘노사모’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습니다.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하시는 일이 없기를,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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