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하기까지의 과정과 병원 이송, 자살 배경

  • 입력 2009년 5월 23일 21시 16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23일 새벽 유서를 컴퓨터에 남긴 뒤 봉화산 '부엉이 바위' 절벽으로 가 투신하기까지의 과정과 병원 이송, 자살 배경 등을 되짚어봤다.

○추억 서린 산에서 투신

오전 5시. 평소와 비슷한 시각 잠자리에서 일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저 내 서재의 컴퓨터를 켠 뒤 유서를 적어 내려갔다. 그는 유서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가족을 의식한 듯 "너무 슬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원망도 하지마라. 운명이다"라고 했다.

5시21분 유서 작성을 끝낸 노 전 대통령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저를 나섰다. 오전 5시 45분경이었다. 경호관 한 명이 황급히 그를 따랐다. 검찰 소환조사를 전후해 칩거를 해온데다 언론의 취재경쟁으로 인해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던 그로선 실로 오랜만의 산보였다. 산 들머리의 감나무, 산딸기나무가 최근 내린 비로 인해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봉화산 등산로 주변은 숲 가꾸기로 지난해 그가 귀향할 당시에 비해 많이 깨끗해졌다. 경남도유형문화재 40호인 산 중턱의 봉화산 마애불을 지나 걸음을 재촉했다.

봉화산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올라가 인근 화포천과 멀리 낙동강 줄기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웠던 곳이다. 맞은 편 야트막한 야산에는 그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기거했던 움막자리도 있다. 봉화산을 오르던 노 전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이 '부엉이 바위'로 부르는 곳으로 향했다. 부엉이 바위는 높이가 30m 이상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자살 바위'로도 불렸다. 이 곳에 앉아 20여 분 동안 동행한 경호관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노 전 대통령은 경호관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었다. 경호관이 "가져 올까요" 하자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어 부근에 등산객이 보이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람들이 지나 가네"라고 관심을 보였다. 경호관이 등산객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노 전 대통령은 몸을 던졌다. 경호관이 저지해 볼 수 없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오전 6시 40분 경이었다.

○회생 노력도 허사

경호관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업고 내려와 대기시킨 경호차량으로 7㎞가량 떨어진 김해시 진영읍 세영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오전 7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바위에 부딪히며 머리를 심하게 다친 노 전 대통령은 의료진의 응급처치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도착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푸른색 바지에 가벼운 복장이었고 한쪽 발에만 등산화가 신겨져 있었다. 등산화 한 짝과 윗옷은 현장에서 발견됐다. 세영병원 손창배 내과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에서 도착했고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20여분 동안 머리에 탄력붕대를 감으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외과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1명이 동승한 병원구급차는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내달렸다. 경호원들도 뒤따랐다.

양산부산대병원은 2월 말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가끔 외래 진료를 했던 곳. 오전 8시 13분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을 의료진이 심폐소생술 등을 동원해 회생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의료진은 오전 8시 반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부산대병원장은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 반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63년의 파란만장한 삶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는 그의 유서처럼, 그가 그렇게 관심을 갖고 좋아했던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칩거와 좌절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4일 형 건평 씨가 구속된 다음날 봉하마을 방문객과의 대화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도리도 있지만, 형님의 동생으로서의 도리도 있어 당장은 사과하기 어렵다. 따뜻해지면 다시 나오겠다"고 인사한 이후 사실상 외부 출입을 중단했다. 그는 여론과 취재진을 의식한 듯 공식행사는커녕 외출마저 거의 하지 않았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형 건평 씨(구속 기소)와 부인, 아들, 딸 등 가족에 대한 검찰의 장기 수사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비롯해 정상문 전 청와대총무비서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 지인과 측근의 잇따른 구속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의 한 비서관은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였다. 투신 사흘 전부터는 거의 식사도 거르고 사저 안에서도 집무실에서만 칩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의 위로방문과 전화도 받지 않았다. 흡연량도 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인 권양숙 여사의 검찰 재소환설이 나오면서 정신적 압박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도 검찰의 장기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 자신을 도와준 주변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원망이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징인 도덕성에 상처를 받은 사실이 참기 어려웠던 듯 그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 폐쇄를 공지하며 올린 글에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아니다.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낙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대검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마주쳤을 때도 "나도 그리로 곧 갈 것 같다"며 묘한 뉘앙스의 농담을 던졌다.

22일에는 사저 움직임도 예전과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1, 2명씩 퇴근하던 비서관과 사저 근무자들이 30분 이상 빠르게, 그것도 대부분 동시에 퇴근했다고 한다. 주변정리를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의 한 고향 친구는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통닭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쁜 마음 먹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눈빛은 절망이 가득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회장의 돈을 직접 받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해명했으나 검찰의 수사는 전방위로 확산됐고 의혹도 수그러들지 않자 '결백'의 표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해=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